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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누가복음 2:14) ...
       
 
  
 

선 시리즈 17 - 엘리야의 선 (3)


11603
2013년 6월 2일 일요일


"나의 말한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니라 …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요한복음 3:28~30)



당회장 이재록 목사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한 왕 아합은 바알의 제사장이었다가 시돈 왕이 된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왕비로 맞아들였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이 타락의 길로 빠져드는 것은 시간 문제였지요. 이에 하나님께서는 최악의 시대에 가장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 주십니다.

엘리야는 자기 의가 없고 겸비해 누구와도 부딪치지 않았습니다. 또한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오직 순종만 했지요. 이방 선지자 850명과 대결해 불의 응답을 끌어내려 하나님만이 참 신임을 나타내며 타락한 백성을 돌이키게 했습니다. 마침내 모든 사명을 마친 후에는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했지요.

그런데 천국에 가서도 주님을 향한 사랑이 얼마나 불붙는 듯 했던지 결국 다시 이 땅에 세례 요한으로 태어나 주님의 길을 예비했고 결국 순교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곧 주의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의 어떠한 분야를 선으로 여기며 기뻐하신 것일까요?


1. 자신이 엘리야인 줄 몰랐던 세례 요한

제사장 사가랴와 아내 엘리사벳은 나이가 많도록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가브리엘 천사장이 사가랴에게 나타나 장차 아이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 주지요.

누가복음 1장 13~17절에 "…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했습니다.

그 후 엘리사벳이 수태해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누가복음 1장 80절에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들에 있으니라" 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빈들에 있었다"는 것은 '세상과 구분된 삶을 살았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면서 늘 하나님과 영적인 교통을 이뤘고 세상에 드러날 때를 정확히 주관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세례 요한은 자신이 엘리야인 줄을 알고 있었을까요? 요한복음 1장 21절에 유대인들이 "네가 엘리야냐"라고 물었을 때 "나는 아니라"고 답한 것만 봐도 자신이 엘리야인 줄 몰랐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엘리야의 마음이 담긴 영은 받았지만 부모의 기로 인해 가려졌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영 자체가 마음이요, 부모의 기를 전혀 받지 않으셨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 땅에 왔는지 잘 아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열두 살 때에 있었던 일을 통해 알 수 있지요. 누가복음 2장 49절에 보면 성전에 계신 예수님을 찾은 육의 부모에게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십니다.

어릴 적부터 자신에 대해 아셨던 예수님과는 달리 세례 요한은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영 안에 엘리야의 마음이 담겨 있었기에 어렴풋이 자신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마음의 주관을 받았지요. 스스로 세상과 구분돼 절제된 삶을 살며 늘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자신의 사명에 대해 깨달아갔습니다. 즉 '자신이 오실 이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과 무엇을 외쳐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하나하나 주관받아 세상에 드러날 때를 기다린 것입니다.


2. 자기 본분을 변함없이 지키는 선(善)

세례 요한은 때가 되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외쳤습니다. 이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사람들이 다 그에게 나아와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았지요(마 3:5~6). 백성은 요한이 혹 그리스도이신가 심중에 의논하게 됩니다.

이때 세례 요한은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눅 3:16)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본분이 주의 길을 예비하는 일임을 분명히 알았기에 그 이상의 선을 넘지 않고 잘 지켰습니다. 항상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신다."고 전파하니 사람들은 장차 오실 분에 대한 사모함이 얼마나 더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자 세례 요한을 따르던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이때 요한의 제자들이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라고 하지요(요 3:26). 그러자 요한이 "이제 내 시대는 끝났구나!" 하며 슬퍼했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제자들에게 "나의 말한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니라 …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했지요(요 3:28~30). 제자들을 타이르며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의 본분을 되새겼고 주님의 나타나심을 진실로 기뻐했습니다.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세례 요한의 모습에서 주님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의 주님에 대한 마음은 순교하기까지 변함없었지요. 하나님께서는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 자신의 본분을 변함없이 지킨 점을 기뻐하며 선으로 인정하셨습니다.


3. 겸비하게 자신을 낮추며 오직 주의 영광을 구하는 선(善)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심히 가까운 마지막 때에 사는 우리에게도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직분자들은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하는 것이 바로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설령 직분이 없어도 누구나 전도의 사명이 있고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사명이 있지요. 어떤 사명을 맡았다 해도 세례 요한처럼 변함없이 자기의 본분을 지키면 주의 길을 잘 예비한 일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처럼 소중한 그릇이 되려면 사심이 없고 겸비하게 자신을 낮추며 주님만 높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릴 때 자신도 영광을 누리고자 하는 사심이 없이 오직 주의 영광만 위해 진실한 마음으로 행해야 하지요. 또 주의 일을 이루는 동역자들이 나보다 더 크게 영광을 돌릴 수 있다면 중심에서 기쁨과 감사함으로 자신의 기득권도 내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 일을 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 영광을 더 드러낼까'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것이 '나는 없고 오직 주의 영광만 구하는 사람'의 큰마음이지요. 각 분야에서 일꾼이 세워질 때도 자신이 '어떤 사명을 받게 될까'에 연연하기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나보다 나은 사람이 머리로 세워지길 바라야 합니다.

이것은 주의 일에 대한 열심이 없거나 식어져서 뒤로 물러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설령 나보다 못한 사람이 머리로 세워졌다 해도 그가 충만하게 잘할 수 있도록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도울 수 있는 마음이 선이지요.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이 사랑받고 칭찬받아도 시기하지 않고 불편해하지 않으며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녕 재림의 주님을 사모하며 기다린다면 엘리야처럼 자기를 온전히 비우고 모든 사람과 화평해야 합니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자신의 본분을 변함없이 지켜야 하지요. 그리하여 다시 오실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영광스럽게 주님을 맞이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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