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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_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은 두려움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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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27일 일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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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중앙성결교회 당회장 이재록 목사
주님 가신 길을 따라 순수한 복음의 진수를 전하며 불같은 성령의 역사 가운데 전 세계 만민을 깨우고 있는 사랑과 권능의 목회자.
1982년 장년 9명과 어린이 4명이 모여 시작된 만민중앙교회를 성령의 역사 속에 전 세계 1만여 지·협력 교회와 함께 사역하는 초대형교회로 성장시켰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신 후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입증하신 것처럼 이재록 목사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권능을 통해 성경이 참된 진리임을 확증하고 있다.
2000년부터 우간다, 일본, 파키스탄, 케냐, 필리핀, 온두라스, 인도, 러시아, 독일, 페루, 콩고민주공화국, 미국, 에스토니아 등에서 대규모 연합집회 부흥사로 활발하게 사역해 왔으며 집회 시 폭발적인 권능의 역사가 나타나 CNN에 보도된 바 있다.
특히 예루살렘에서 개최된 '2009 이스라엘 연합대성회'는 220여 개국에 중계됐고 수많은 사람이 주님을 영접해 하나님께 영광 돌렸다. 지금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며 마지막 때 전 세계 만민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온전히 이뤄 드리고자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고 있다. www.drlee.or.kr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한일서 4:18~19)
사랑이 있는 곳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받을 형벌이 없으니 두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도 아끼지 않고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서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만일 두려움이 있다면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수없이 고백했을지라도 엄청난 고난이 닥쳤을 때 두려워한다면 온전히 사랑한다 할 수 없습니다. 진실한 사랑은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 해도 결코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두려움이 있는 이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마치 따뜻한 봄날 햇볕을 받아 대지에서 새싹이 돋고 아름다운 꽃이 피는 것처럼 하나님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사랑이 움트고 온전한 사랑으로 성숙해 갑니다. 나아가 온전한 사랑이 임하면 두려움을 내어쫓게 되지요. 만일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두려움이 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두려움은 범죄로 인해 옵니다.
창세기를 보면 인류 역사에 죄가 들어오게 된 과정이 기록돼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께서 따로 창설해 주신 아름다운 에덴동산에서 각종 나무 실과를 먹으며 하나님과 교통하며 아무 부족함 없이 살았지요. 그런데 간교한 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는 순간부터 비극은 시작됐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해 죄가 들어오자 아담은 죄로 인한 수치감으로 자기의 벗은 몸을 부끄러워하며 나뭇잎으로 가리고자 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아직 죄에 물들지 않았기 때문에 발가벗겨 놓아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담도 죄가 들어오기 전에는 벌거벗고 지내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했는데, 죄가 들어오니 이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됐지요.
이때 하나님께서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을 찾으십니다. 그러자 아담은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하지요. 전에는 다정하고 부드러웠던 하나님의 음성이 죄를 짓고 나니 두려움으로 임한 것입니다. 결국 아담은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 말씀대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게 됐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저주받은 땅에서 수고하며 고달픈 삶을 살게 됐습니다. 다음으로 범죄한 가인의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만을 기뻐 받으시자 시기와 미움으로 동생 아벨을 쳐죽이고 맙니다. 이로 인해 가인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임해 그때부터 땅에서 피하여 유리하는 자가 됐지요. 범죄한 가인은 너무 두려워 하나님 앞에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라고 호소합니다. 그리고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하면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간청하지요.
이처럼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하므로 죄인에게는 두려움이 찾아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만큼 두려움이 임하게 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지도자로 하여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 능력으로 베풀어지는 열 재앙을 보았습니다. 또 지팡이를 내미니 홍해가 갈라지고, 반석을 치니 물이 나오는 역사도 체험했습니다. 험난한 광야길에서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받았고, 메추라기와 만나로 먹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기도 했지요. 그러나 막상 하나님께서 임재하시자 어떻게 행했습니까?
출애굽기 20장을 보면, 우레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 가운데 하나님께서 임재하십니다. 그때 백성은 다 두려워 떨며 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고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했지요.
이런 백성과 달리 모세는 두려움에 떠는 백성을 진정시키며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강림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치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했습니다. 백성은 멀리 섰고 모세만 하나님께서 계신 곳으로 가까이 나아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역사를 체험하기는 했지만 마음으로 믿지는 못했습니다. 반면에 모세는 마음 중심에서 믿었고 하나님 마음을 닮아 악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니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불평하고 모세를 원망하며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범죄한 백성이 진멸당할 위기에 놓이자 자신의 생명을 걸고 용서해 달라고 간구했지요. 그만큼 하나님 마음을 닮은 모세였기에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하나님의 형상을 보았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다른 선지자와는 이상 가운데, 꿈 가운데 만나 주셨으나 모세와는 친히 대면해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이 지상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승했고 온 집에 충성했기 때문입니다(민 12장).
셋째로, 두려움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에 대해 그만큼 알지 못한다는 뜻이지요. 이러한 예로는 구약 성경에 기록된 욥의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욥기 1장 1절에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늘 성결케 했으며 잔칫날이면 혹시 그의 자녀들이 잔치를 즐기는 중에 죄를 범해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했을까 염려해 자녀들의 수대로 번제를 드릴 정도로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행하기 위해 힘썼습니다.
욥이 이렇게 행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해서라기보다는 두려움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욥기 3장 25절을 보면 재앙을 만난 후에 욥이 고백하기를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하지요. 곧 축복을 넘치게 받던 중에도 욥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혹 내게 재앙을 주시지는 않을까'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진정 하나님과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가 이뤄졌다면 어떤 염려나 두려움이 없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욥기 2장 10절을 보면 욥은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면서 하나님을 오해하여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유 없이 아무에게나 재앙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욥의 말이 옳다면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여기며 섬길 수 있겠습니까?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께 복을 받았으면 재앙도 함께 받아야 한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이처럼 욥은 진리를 온전히 알지 못했고 하나님에 대해 지식적으로 알기는 하지만 직접 체험한 바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이나 사랑을 헤아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오해하며 두려워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욥을 참된 사랑의 차원으로 이끄시기 위해 연단을 허락하셨습니다. 결국 연단을 통해 하나님의 참사랑을 깨닫게 된 욥은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하는 고백을 드리게 되지요(욥 42:5).
연단받기 전에는 전해 들은 지식에 의해 두려움의 하나님으로 알고 섬겼는데 이제 직접 만나고 체험하니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어 이전보다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온전한 사랑을 이루면 모든 두려움을 내어 쫓으니 하나님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지요. 오히려 사모하면서 항상 설레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 사랑 안에는 모든 죄가 대속되는 길이 열려 있기에 사랑이 임하는 만큼 두려움이 물러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온전한 사랑을 이루면 두려움이 조금도 틈타지 않습니다.
2. 두려움이 없는 온전한 사랑을 이루려면
요한일서 5장 3절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했습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의 계명들을 지킨다는 것은 성경 66권 말씀을 지켜 행하고 사랑으로 완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떤 사람을 진정 사랑한다면 그가 부탁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 주고 아무리 어렵고 힘든 것이라 해도 기쁜 마음으로 해 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미운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한다는 것은 곤욕이지만 사랑하는 사람, 음성이라도 듣고 싶어 늘 사모하며 기다리던 사람과 함께한다면 하루 종일 걷는다 해도 다리가 아픈지조차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 조금도 힘들지 않고 오히려 그 자체가 행복하고 기쁩니다. 하나님을 사랑해 하나님 말씀을 하나하나 지켜 나가는 만큼 두려움이 사라지고 진리 안에서 강하고 담대해집니다. 그래서 결국은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온전한 사랑에 이를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 진리 안에 거할 때 담대히 구하게 되고 무엇이든지 응답받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의 모습은 어떠한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키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항상 느끼고 계십니까? 사랑하는 자녀들의 머리털까지 세시는 하나님, 모든 것을 아시고 섬세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삶 속에서 체험하고 계신지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때로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두려움도 있을 수 없습니다.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실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지요. 더욱이 우리에게는 돌아갈 본향인 천국이 있으니 이 세상에서 육의 생명이 끝난다 해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며 주님과 사랑을 나눌 것을 바라본다면 현재 어떠한 고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넉넉히 승리해 나갈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천국집을 예비하시며 사랑하는 자녀를 맞이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부모의 심정으로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사랑하되 두려움이 없는 온전한 사랑을 신속히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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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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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겉옷을 나누고 속옷을 제비뽑은 이유(2) 예수님의 속옷을 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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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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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의 참된 의미를 정확히 아십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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