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회장 이재록 목사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5:22~23)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 하나인 충성의 열매는 무엇이며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충성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주 안에서 충성스러운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보배로서 칭찬과 신뢰를 받으며 천국에서도 큰 자가 될 수 있습니다.
1. 자신의 사명 이상을 감당하는 충성
만일 급여를 받는 일꾼이 그 충성 됨을 칭찬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신이 맡은 일을 잘 감당하였다 해서 '충성스러운 일꾼'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보다 넘치게 감당하여야 하지요.
진정 충성한다면 '급여를 받은 만큼은 해야지.' 하는 계산적인 마음이나 억지로 감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열정으로 자신의 시간과 물질, 노력을 조금도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는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을 살리고자 자기 생명을 걸고 기도하였습니다. " …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 32:31~32).
모세의 사명은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사랑과 정성을 다해 백성을 인도하였으며, 그들이 범죄했을 때에는 자신이 책임을 지고자 하였습니다.
이방인 선교에 앞장섰던 사도 바울 역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고백합니다(롬 9:3). 이처럼 충성스러운 사람은 어떤 분야를 감당하든지 "나는 이만큼만 하면 된다."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과 정성을 다해 넘치게 감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마음에 할례하며 진리 안에서 충성
만일 범죄 조직에 들어가 목숨 바쳐 헌신했다고 그 사람을 충성 되다 하지 않습니다. 선과 진리 속에서 충성할 때라야 하나님 앞에서 충성스러운 일꾼이 될 수 있지요. 이렇게 진리 안에서 충성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음의 할례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셨지요. '죽도록 충성한다'는 것은 단순히 육의 목숨을 다하기까지 열심히 일하고 충성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 66권에 담긴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 다해 이뤄 드린다는 뜻이지요.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백했던 사도 바울처럼 자신의 육을 철저히 죽이고 성결되어 가는 것이 바로 영적인 충성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이 '성결'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힘을 다해 마음에 할례를 해야 합니다. 사명이나 직분을 맡아 감당한다 해도 성결을 함께 이뤄가야 충성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어떤 어려움이 오거나 마음의 연단이 있어도 사명을 소중히 여기고 끝까지 감당하지요. 반면에 마음의 할례를 소홀히 하는 사람은 어떤 미혹이나 어려움을 만날 때 자기 마음을 지키지 못하니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를 저버리고 나중에는 사명을 놓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충성을 하려면 반드시 마음의 죄악을 벗어 버리는 영적인 충성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마음의 할례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이며, 성결 된 마음으로 사명을 감당할 때 큰 상급으로 쌓입니다.
예를 들면, 봉사를 해도 서로 간에 화평을 깨면서 원망, 불평하는 마음으로 할 때는 오히려 상급이 깎입니다. 하지만 화평 가운데 서로 섬기며 선과 사랑으로 봉사한다면 모든 수고가 아름다운 향이 되어 하늘나라에 상급으로 차곡차곡 쌓이는 것입니다.
3. 주인의 마음에 맞게 순종하는 충성
만일 주인이 종에게 집안 청소를 시켰는데 밭에 나가 하루 종일 일했다면 충성스러운 종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순종하지 않은 이유는 자기 생각에 맞지 않거나 사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당장은 주인을 섬기는 것 같아도 충성스러운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과 욕심을 좇아 하는 것이기에 언제든지 주인의 뜻을 저버릴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라면 먼저 하나님 마음에 맞는 충성이 되어야 하며, 영적인 질서 가운데 윗분의 마음에 맞는 순종으로 충성해야 합니다. 성경에 '충성된 사자는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처럼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한다'고 하였습니다(잠 25:13). 맡은 분야에 열심을 내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한다면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다윗 왕의 친척이요 군대장관이었던 '요압'이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그는 다윗이 연단받던 시절 대적들에게 쫓겨 도망 다닐 때도 지혜롭고 용맹하여 그 곁을 지키며 생사고락을 같이 하였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요압을 편히 여길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윗에게 무례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고, 자기 유익에 맞지 않으면 다윗의 뜻을 어기곤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요압은 다윗의 뒤를 이은 솔로몬 왕에게 반역하다가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도 무엇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보다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내 생각, 내 뜻대로 하기에 앞서 주 안에서 윗분의 의중에 맞춰 일할 수 있어야 참된 충성이라 할 수 있지요.
4. 자신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 충성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에 대해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칭찬하셨습니다(민 12:7). 온 집에 충성한다는 것은 자신이 관련된 모든 분야에 두루 충성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여러 직분을 받으면 책임을 다해야 하며, 특별한 사명이 없어도 각종 모임에 속한 회원으로서 자리를 지키는 것도 충성할 분야 중에 하나입니다.
교회에서만 아니라 가정이나 직장, 학교에서도 감당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모든 분야에서도 그 구성원으로서의 본분을 다해야 하지요.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교회의 양 떼로서, 일꾼과 직분자로서, 가정, 직장, 학교의 구성원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 온 집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한두 가지 분야만 열심히 하고 나머지는 소홀히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 충성해야 하지요.
주 안에서 성령으로 영을 낳아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만큼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비록 적은 시간을 투자한다 해도 모든 분야에서 영의 마음으로 심으면 반드시 열매로 거둘 수 있습니다. 먼저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그 입장을 생각하기에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모든 분야를 돌아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어떤 모임에 함께하지 못할 상황이라면 다른 방법으로라도 마음을 모아 주며 어찌하든 힘이 되려고 하지요. 이렇게 마음에 선이 있는 만큼 어느 한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온 집에 충성하며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을 이룰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은 후,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죽도록 충성하는 이유는 주님의 핏값인 영혼을 사랑하여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시편 101편 6절에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 하였습니다. 충성의 열매를 맺으며 주님의 사랑을 실천함으로 하나님 보좌가 있는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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