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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누가복음 2:14) ...
       
 
  
 

주님의 눈물


8867
2017년 9월 10일 일요일


당회장 이재록 목사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2:2)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마음 가득한 '사랑'으로 인해 많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눈물에 녹아 있는 인생들을 향한 사랑, 아버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느껴야 합니다. 주님의 눈물에 담긴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째, 인생들의 구원을 위한 눈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죄의 삯으로 영원히 사망의 형벌을 받게 될 인생들을 구원하시고자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끔찍한 지옥이 아니라 아름다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셨습니다.

마음이 조금만 선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깨달을 수 있게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못했고 더 나아가 적대시했으며, 심지어 미친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예수님의 친속들도 처음에는 예수님을 믿기보다 사람들의 평판을 믿고 제지하려고 했습니다. 율법사와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병든 사람을 고쳐 주시는데도 안식일에 일함으로 율법을 어겼다고 정죄했습니다. 또한 오랫동안 귀신들려 비참하게 살던 사람에게서 귀신을 내쫓아 주셨는데도 예수님을 '귀신의 왕'이라고 조롱했지요.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고자 자신을 낮추고 인생들과 같이 되셨음에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천국 복음을 듣기 위해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모이면 서기관과 율법사들은 시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주시했지요. 놀라운 기사와 표적을 베푸심으로 더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면 바리새인과 대제사장들은 어찌하면 예수님을 없앨까를 모의했습니다.

이처럼 악한 인생들의 마음을 예수님께서는 친히 보고 듣고 느끼시며 늘 아버지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이들뿐 아니라 예수님을 배척하고 판단, 정죄하는 이들도 구원에 이를 수 있기를 바라셨지요. 이처럼 예수님의 눈물은 인생들의 구원을 바라시는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셨습니다.


둘째, 인생들의 변화를 위한 눈물입니다.

육신의 생각에 가려 영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한복음 6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말씀하시자 예수님을 붙좇던 무리 중 많은 사람이 수군거렸고, 제자 중 여럿이 듣고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수군거리며 결국 예수님을 떠나지요.

자기 의와 틀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를 깨우치지 못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마태복음 1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완고함을 책망하시기보다 비유를 들어 깨우쳐주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다가 자신들의 의와 틀에 어긋난 점을 발견하면 따져 물었지만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우쳐 어찌하든 변화될 수 있도록 마음을 쓰시며 여러 비유와 예시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함께하는 제자들을 위해서도 사랑으로 중보기도해 주셨지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이후 남겨질 제자들이 사명을 잘 감당하고 천국에서도 영원히 함께하기를 바라셨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섬세하게 살피시며 아버지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올리셨지요. 이러한 눈물의 기도는 제자들에게 큰 사랑의 힘으로 작용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5~37) 고백한 대로입니다. 그 결과 가룟 유다를 대신한 맛디아까지 모든 제자가 새 예루살렘 성의 열두 기초석에 이름이 기록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셋째,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눈물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을 때 인생들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고 원수 마귀 사단의 종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만이 인생들에게 찬송을 받기에 지극히 합당한 분임에도 헛된 신을 경배하고 있었지요. 이에 예수님께서는 오직 아버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나타내심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셨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으셨을 때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말씀하셨지요(요 11:4). 결국 예수님께서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크게 드러났고,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 밖에도 벙어리로 말하게 하고 불구자로 건전하게 하며, 절뚝발이로 걷게 하셨습니다. 소경을 보게 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문둥병자를 깨끗케 하셨지요.

예수님께서 이런 표적을 나타내신 이유는 인생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크시고 불가능이 없으시며 참되고 유일한 신이심을 믿어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송하게 하기 위함이었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응답하시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하셨지요.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받으신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위한 속죄제물이 되어야 무수한 인생이 구원받아 하나님 자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심정이 잡히시던 날 밤, 아버지 하나님께 올린 기도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 17:4~5).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셨습니다. 이 땅에 사시는 동안 많은 눈물을 흘리셨지만, 그 아름다운 눈물의 열매로 구원받고 응답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무수히 나왔고 세세토록 영광받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흘리신 눈물은 사랑의 결정체요, 인생들을 위한 희생의 증거였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들은 주님께서 눈물 흘리며 씨를 뿌린 대가로 맺힌 열매들입니다(시 126:5~6). 주 안에서 더욱 실하고 아름다운 열매로 나와 영광만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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