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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순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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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2일 일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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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야고보서 3:17~18)

만민중앙성결교회 당회장 이재록 목사
Senior Pastor Dr. Jaerock Lee
- 예수교연합성결회 총회장
- (사) 기독교 세계부흥선교협의회 상임총재
- (사) 국회사랑 구국기도 총연합회 공동총재
- 세계기독방송네트워크(GCN) 이사장
- 세계기독의사네트워크(WCDN) 이사장
- 만민국제신학교(MIS) 이사장
- 연합성결신학교 이사장
- 목회학 박사, 명예신학 박사
- 만민중앙성결교회 당회장
- 기독교방송, 극동방송 등에 방송 설교
- 미국 뉴욕, 워싱턴, 볼티모어, 메릴랜드, L.A., 하와이, 일본,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아르헨티나, 온두라스, 페루, 러시아, 독일,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 콩고민주공화국, 이스라엘 예루살렘, 에스토니아 등에서 연합대성회 인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계명을 지키라, 선을 행하라"고 당부하시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눈앞의 유익을 좇아 자기 뜻대로 살아갑니다. 반면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의 방법보다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주시는 축복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알기에 기쁨으로 계명들을 지키며 선을 행하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선을 좇아 죄악을 버리고 성결을 이루며 화평을 좇는 사람은 관용과 양순의 열매를 맺습니다. 관용과 양순은 사람의 마음이 진리로 변화되면서 임하는 넉넉함과 여유로움 속에서 나오는 덕목입니다. 지난 호에 게재한 관용의 지혜에 이어, 이번 호에는 '양순의 지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양순'의 영적 의미
'양순'은 영적으로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의 향이 말과 행함의 열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음이 선과 진리로 가득하면 외적으로도 단물만 내는 입술의 열매와 아름다운 행함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선하다 해서 단순히 착하고 부드러운 것만은 아닙니다. 강하고 담대하지요. 영적인 선과 진리로 가득 찬 마음에는 어둠을 물리치는 빛의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을 진리로 이끌 수 있고 마음을 다스리게 도와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양순의 열매가 맺힌 주의 종이나 일꾼이 상담해 줄 때에는 말에 권세가 따릅니다. 양순의 열매가 맺히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는 상대의 생각에 맞춰서 상담해 준다 해도 해결되는 것은 그 순간뿐,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문제를 들고 또 찾아오지요. 애써 상담해 주고 심방해도 나중에 보면 처음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양순의 열매가 맺혀 있으면 상대의 의심과 부정적인 생각의 고리를 명쾌하게 끊어 줄 수 있습니다. 몇 마디 대화로도 상대의 상태를 분별하여 생각하는 방향 자체를 선하게 바꿔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양순'은 단순히 착하고 순한 것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이것도 저것도 가할 때 성령으로 분별해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는 편을 택할 수 있는 깊은 선의 차원입니다.
2. 깊은 선의 차원, 양순의 세 가지 특징 1) 어떠한 상황에 처한다 해도 진리로 문제의 핵심을 분별해 상대의 마음을 평안케 합니다 누가복음 12장에는 어떤 사람이 유산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는 부모의 유산을 공평히 나누도록 자신의 형에게 권면해 달라고 하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말씀하십니다. 탐심을 버리지 않는 한 이후로도 형제간에 감정 상할 일이 생길 수 있고, 탐심을 버릴 때라야 하나님께서도 물질의 축복을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근본적인 해결 방법을 깨우쳐 주심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답변해 주셨습니다. 다니엘서 5장에는 바벨론의 왕 벨사살이 잔치를 열어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탈해 온 그릇에 술을 부어 마시고 바벨론의 우상들을 찬양할 때의 일이 나옵니다. 왕궁 벽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더니 뜻 모를 글자를 썼습니다. 이때 왕은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보고 심히 놀라고 당황하여 누구든지 그 글자를 읽고 해석을 보이면 셋째 치리자로 삼겠다고 하지요. 결국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다니엘을 불러 해석하게 하니 하나님 앞에 심히 교만한 왕의 행동이 문제의 원인임을 깨우쳐 주며, 글자의 뜻은 왕의 잘못으로 나라가 메데와 바사에 넘어간다는 것임을 알려 줍니다. 이에 벨사살 왕은 약속대로 다니엘에게 영화로운 자주색 옷과 금사슬을 주고, 나라의 셋째 치리자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닥칠 하나님의 심판을 돌이키기 위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향락을 즐기고 잔치를 벌였지요. 결국 그날 밤 그는 나라를 빼앗기고 목숨마저 잃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왕에게 미리 경고해 주셨고, 그는 다니엘의 지혜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지만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으니 아무런 유익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상담받는 것은 좋아해도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진리를 마음으로 받고 행해 자신부터 변화되고 선한 지혜로 주변을 변화시켜 나갈 때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까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들어오게 됩니다. 2) 어떠한 상황에서도 잠잠히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자족합니다
자기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거나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불편한 기색을 바로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초조해하고 안색이 변하여 주변 사람들까지 불안하게 만들지요.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남의 탓으로 돌리며 비난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뿐더러 하나님의 역사는 더더욱 체험할 수 없으며 주변의 인심까지 잃게 됩니다.
양순의 마음을 이룬 사람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도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습니다(빌 4:11~13). 당황하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잠잠히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자 합니다.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기 때문에 늘 평안하지요. 나아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택하여 행합니다.
물론 전혀 긴장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때라도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깊은 마음에는 요동함이 없고 평안하지요. 하나님께서는 그 신뢰가 진실할 때 반드시 멋지게 응답하시고 크게 영광을 받으십니다(롬 8:28). 믿음은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하나님께서 움직이시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정녕 믿는다면 범사에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 뜻 안에서 자신이 갈 길을 찾아 믿음으로 행해야 하지요. 양순의 마음으로 범사에 자족하며 선을 좇아 행해 나가면 성령께서 앞길을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하나님과의 동행을 체험할 수 있는 양순의 지혜입니다.
3)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며 마땅히 행할 것 이상으로 행합니다
양순의 마음을 이룬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말씀대로 순종하며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범사에 더 좋은 것을 분별하여 행합니다. 하나를 명하셔도 하나님 마음에 맞추어 둘, 셋 혹은 그 이상을 해내지요. 이에 하나님께서는 "내 마음에 합하다" 하시며 매우 기뻐하십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많습니다. 한쪽은 진리, 다른 한쪽은 비진리라면 당연히 진리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둘 다 진리라면 대부분 자신이 원하는 쪽을 택합니다. 하지만 양순의 마음을 이룬 사람은 하나님께 더 영광이 되는 것을 택하지요. 어느 것이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지를 생각하여 선택합니다. 남유다 왕국이 바벨론의 침략을 받았을 때 어린 나이에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그랬습니다.
다니엘서 1장을 보면 다니엘은 바벨론의 왕궁에서 나오는 음식 중에 우상 앞에 바쳐진 제물이나 하나님께서 금하신 가증한 짐승들이 들어 있을 수 있기에 환관장에게 물과 채식만 달라고 부탁하고, 감독하는 자에게 열흘 동안만 시험해 보자고 제안합니다. '여기는 바벨론이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까' 하며 적당히 타협하고 먹을 수도 있지만, 다니엘과 친구들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을 먹지 않기 위해 뜻을 굽히지 않고 채식을 하지요. 결국 왕의 진미를 먹은 소년들보다 얼굴이 더 윤택하고 아름다웠습니다. 하물며 다른 분야에는 어떠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든 더 옳고 선한 쪽을 택하려는 그들의 중심을 보고 축복하셨습니다. 결국 왕의 인정을 받아 높은 지위에까지 올랐던 것입니다.
범사에 하나님 앞에서 더 합한 쪽을 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 선한 것을 택했는데도 현실적으로는 축복이 아니라 시련이 오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원망하거나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능히 감당하겠다는 담대함이 있을 때라야 가능하지요. 하나님에 대한 굳건한 신뢰가 바탕에 있어야 합니다. 다니엘과 친구들이 환관장과 감독하는 자에게 부탁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얼마나 선하고 성실하게 행했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움직이시도록 평소에 선한 행함을 쌓았던 것이지요.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내보일 때 주변의 이해와 도움을 구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가령, 중요한 교회 행사에 참석하고 싶은데 직장의 업무상황이나 휴가 일정이 맞지 않거나 가족 모임과 겹칠 수 있지요. 이러한 경우에 배려를 받기 위해서는 평소에 선을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지런하고 성실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업무를 충실히 감당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게 해야 하지요. 가족에게도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마음은 함께한다고 느낄 수 있도록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만일 자기 좋을 대로 행하다가 필요할 때만 이해해 달라고 요구한다면 이는 자기 욕심에 불과합니다.
3. 양순의 마음이 풍성히 임한 사도 바울 1) 영혼을 실족시키지 않는 마음 사도 바울은 주님을 알기 전에도 구약의 율법을 철저히 지켰으며, 주님을 만난 후에는 복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렸고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것도 누리지 않았습니다. 한 예로,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게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지 않게 하리라"(고전 8:13)는 그의 고백을 볼 수 있지요.
사도 바울이 사역한 고린도 지역은 우상 숭배가 성행했습니다. 자연히 우상의 제물로 쓰인 고기를 시장에 내다 파는 경우가 많았지요. 그러다 보니 우상 앞에 바친 제물인 줄 모르고 사먹는 경우가 있어서 성도들은 이것이 하나님 앞에 문제가 되는지 궁금해했습니다. 물론 먹기 전에 우상의 제물인 줄 알았다면, 안 먹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불가피하게 먹어야 할 상황이라면 먹어도 죄가 되지는 않습니다(롬 14장). 단순히 음식으로써 먹는 것일 뿐, 우상 숭배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은 먹는 것 자체가 꺼림칙할 수 있고, 믿음 있는 사람이 먹는 것을 보고 우상 숭배에 동조하는 것으로 생각해 판단 정죄할 수 있지요. 혹은 '사도 바울 같은 분도 우상의 제물을 먹으니까 나도 괜찮겠지' 하면서 거리낌 없이 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얼마든지 믿음으로 먹을 수 있지만 혹시라도 이를 본 사람이 실족할 상황이라면 차라리 먹지 않겠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설령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더라도 영혼을 실족시키지 않는 편을 택하겠다는 것이지요.
2) 자신이 마땅히 쓸 권리를 쓰지 않는 마음
사도 바울은 복음 전파에 장애가 되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들처럼 먹고 마시는 권리, 결혼할 수 있는 권리를 쓰지 않았습니다. 또 일하지 않고 마땅히 얻을 수 있는 권리도 포기하였지요. 원칙적으로 주의 종은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기 위해 성도들로부터 필요한 것을 공급받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스스로 일해서 쓸 것을 마련했지요. 그가 이렇게 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성도들을 사랑하여 짐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기뻐하시고 다른 사도들보다 큰 권능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밝은 영감과 지혜도 더하셨기에 성도들에게 지혜와 명철로써 명쾌한 답을 줄 수 있었지요. 또 큰 권능의 역사를 통해 무수한 영혼을 구원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양순의 마음을 온전히 이루면 항상 선을 택할 수 있습니다. 어떤 목적이 있어서, 혹은 누가 보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해 드리고 싶기 때문이지요. 마음에 가득한 선이 말과 행함 가운데 저절로 배어 나오는 것입니다. 주의 종이나 일꾼들은 더욱 양순의 마음을 이루어야 합니다. 범사에 본이 되어야 하기에 하고 싶은 일도 못할 때가 있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믿음으로 한다 해도 '이것이 옳은 일인가? 하나님 앞에 더 합한 것인가?' 겸비하게 자신을 점검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쪽을 택해 나갈 때 더욱 온전케 될 것입니다. 스스로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는 것을 택할 수 있다면 이것이 참 지혜입니다. 나아가 사심이 없는 만큼 모든 것을 명확하게 분별할 수 있는 지혜도 얻을 수 있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장차 영원한 천국에 이르렀을 때에 아름다운 처소와 상급을 바라보며 작은 소망까지도 기억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눈물로 감사와 사랑을 고백드리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을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편을 택하는 양순의 지혜를 받아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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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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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겉옷을 나누고 속옷을 제비 뽑은 이유(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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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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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의 참된 의미를 정확히 아십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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