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회장 이재록 목사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 고린도전서 13:4 -
자기 자랑이 많은 사람은 대부분 남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므로 쉽게 교만에 빠집니다. 자기가 잘나서 일이 술술 풀리고 잘되는 줄로 착각하여 우쭐대거나 나태해지기 쉽지요. 그런데 성경 66권을 자세히 살펴 보면 하나님께서 특히 싫어하시는 악 중에 하나가 '교만'입니다.
1. 교만한 사람의 특징
'교만'이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지 못하고 무시하는 것, 내가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을 제일로 여깁니다. 매사에 상대를 무시하고 얕잡아보며 가르치려 하지요.
일반적으로 교만은 자신보다 못해 보이는 상대에게 나타나지만, 심한 경우에는 자신을 가르쳐 주고 이끌어 준 사람이나 질서상 윗사람까지도 무시할 수 있습니다. "뭘 모르고 저렇게 말씀하시네"라고 불평하거나 "그 정도는 나도 아는데…" 하며 잘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교만한 사람과 대화를 하다보면 곧잘 변론으로 이어져 다툼이 생기고, 심하면 싸움으로 번지기까지 합니다. 잠언 13장 10절에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했으며, 디모데후서 2장 23절에는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만 옳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고 악한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마다 양심이 다르고 지식도 다릅니다. 이는 보고 들으며 배우고 체험한 것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지식 중에는 오류도 많고, 스스로 엉뚱하게 입력한 것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굳어지면 자신만의 '의'와 '틀'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의'란 자기가 옳다고 하는 것이며, 이것이 굳어지면서 '틀'이 됩니다. 성격이 틀이 되기도 하고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이 하나의 틀이 되기도 하지요. '틀'은 사람의 몸으로 치면 골격과 같아서 자기만의 모습을 만들 뿐 아니라 일단 형성되면 깨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생각도 대개 자기 의와 틀에서 나옵니다.
자격지심이 많은 사람은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해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부자가 옷깃만 여며도 옷을 자랑한다 하며, 누가 어려운 문자만 써도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끼지요. 그래서 교만하면 자신이 틀려도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계속 주장하다가 변론으로 이어집니다.
반면에 겸손한 사람은 설령 자신의 주장이 옳고 상대가 틀려도 변론하지 않습니다. 백 퍼센트의 확신이 있다 해도 만에 하나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 두지요. 굳이 상대를 누르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마음에는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영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상대가 자신보다 가난하든, 배움이 적든, 힘이 약하든, 진심으로 자신보다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설령 어린아이라 해도 그 마음을 배려해 줍니다. 특히 주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존귀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 육적인 교만과 영적인 교만
대체로 눈에 띄게 자신을 뽐내고, 남을 무시하는 등 겉으로 드러나는 교만은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육적인 교만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진리를 알면 육적인 교만을 버리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버려집니다.
반면 영적인 교만은 스스로 발견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버리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러면 영적인 교만이란 무엇일까요?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 하나님 말씀을 들어 많이 압니다. 직분과 사명을 받아 위치가 높아지기도 하지요. 그러다 보면 자신이 아는 말씀을 마음에 이룬 것처럼 착각합니다. 상대를 지적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면서도 자신은 진리로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요.
어떤 사람은 마음이 높아져 꼭 지켜야 할 절차를 자신의 유익을 좇아 무시하면서도 '나는 이만한 위치에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높아진 마음을 영적인 교만이라고 합니다. 마음이 높아져서 하나님의 법과 질서를 무시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이는 참이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마음 또한 진정한 사랑이라 할 수 없지요. 진리는 오직 좋은 것만 보고 듣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4장 11절에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했습니다. 과연 나는 상대의 잘못을 보았을 때 판단하고 정죄하는 마음이 앞서는지, 아니면 감싸주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는지 생각해 보면 내 안에 얼마나 겸손과 사랑을 이루었는지 알 수 있지요.
사람은 누구나 성결하기 전에는 교만해질 수 있는 속성이 있으므로 이러한 죄성을 뿌리째 뽑아 버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불같은 기도로 온전히 뽑아 버리지 않으면 어느 순간 다시 교만한 모습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마치 잡초를 잘라내도 뿌리가 남아 있으면 다시 싹이 자라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어린아이처럼 주님 앞에 항상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을 자신보다 낫게 여기며 생명 다해 섬기는 최고의 사랑을 이루기까지 변함없이 달려가야 합니다.
3. 자신을 믿고 사는 교만한 사람들
느부갓네살은 바벨론 제국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사람입니다. 고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공중 정원'도 그의 시대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왕국과 업적을 스스로 이루었다고 자랑하며 자신의 동상을 세워 신처럼 숭배하게 했습니다(단 4:30).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느부갓네살에게 세상 주관자가 누구인지 깨우쳐 주십니다(단 4:31~32). 결국 그는 왕궁에서 쫓겨나 소처럼 풀을 뜯어 먹고 머리를 풀어헤친 채 광야에서 짐승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지요. 7년 후에야 정신이 돌아온 그는 자신의 교만을 깨닫고 하나님을 인정합니다(단 4:37).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을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살다 보면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오늘날 과학 기술이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태풍이나 지진 등 갑작스런 천재지변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지요.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병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갖가지 문제를 만나면 하나님을 의뢰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믿어 자신의 생각과 경험, 지식 등을 의지하지요. 끝내 해결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교만하기 때문에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겸손히 하나님을 의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도 여전히 자신과 세상을 더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 가운데 사람 편에서 교만하여 자신을 낮추지 않으면 도와주실 수 없습니다. 그러니 원수 마귀 사단의 훼방에서 지킴 받을 수 없고, 형통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잠언 18장 12절에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말씀한 대로 실패나 멸망을 부르는 것은 바로 자신의 교만함이라는 사실을 깨우쳐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인생들은 피조물로서 모두 동등한 존재입니다. 또한 아무리 자랑할 것이 많다 해도 이 세상은 잠시 잠깐일 뿐이며, 반드시 이 땅에서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심판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 10절에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했으니 하나님 앞에 철저히 자신을 낮추고 순종함으로 장차 천국에서 존귀한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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