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회장 이재록 목사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 갈라디아서 5:22~23 -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충성은 자신이 맡은 일을 열심히 한다 해서 그 행위만으로 충성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떤 특정한 분야에만 생명을 다하기까지 열정을 쏟는다 해서 온전한 충성이라 하지도 않지요. 만약 가정에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혹은 남편으로서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에서 주어진 일을 잘 감당했다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진정 하나님 앞에 충성된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보배요, 보석같이 사랑스러운 향이 납니다. 한결같은 마음의 향이 나고 우직하고 묵묵한 순종의 향, 신실한 마음의 향이 나지요. 과연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충성의 열매는 어떤 것일까요?
1. 사랑과 정성 다해 맡겨진 일 이상 해내는 충성
급여를 받는 직원이 자신의 업무를 잘 감당했다 해서 '충성했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책임을 완수했다'고 할 수는 있지만 삯을 받은 만큼 한 것이므로 '충성'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요. 충성된 사람은 어떤 분야를 감당하든지 '나는 이만큼만 하면 된다'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정성을 다해 넘치게 감당합니다. 사도 바울은 영혼들을 돌아보면서 억지로 하거나 대충대충 하지 않았습니다. 사명 감당하기를 크게 기뻐하므로 자기 재물을 허비하며 자기 자신까지 허비했지요(고후 12:15). 영혼들을 위해 아낌없이 드리고 또 드리며 헌신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사명을 기쁨과 사랑으로 넘치게 감당할 때 참된 충성의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책임을 지는 분야에 있어서도 충성의 열매가 맺힌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 이상으로 책임을 다합니다. 모세의 경우,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을 살리기 위해 자기 생명을 걸고 기도했습니다(출 32:31~32).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과 정성을 다해 백성을 인도했기에 그들이 잘못했을 때도 자기가 잘못한 것처럼 안타까운 마음, 책임지고자 하는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충성의 열매가 맺힌 사람이라면 적어도 '나는 책임이 없다' 하고 끝나지 않습니다. 비록 자신이 최선을 다했다 해도 그에 앞서 하나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자신에게 사명을 맡기셨는지를 떠올리지요.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며 백성을 멸하겠다고 하신다 해도 모세처럼 멸망을 원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영혼들에 대한 긍휼을 떠올립니다. 그러기에 "다 제 탓입니다. 제가 잘 인도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저를 보셔서라도 다시 기회를 주세요"라는 진심 어린 기도가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2. 죄를 버리고 진리 안에서 성결 이루는 영적 충성
우리가 열심히 신앙생활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사명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감사함으로 뜨겁게 사명을 감당하며 충성하다가 어느 순간 사명을 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충성했다고 하지만 영적인 충성을 등한히 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충성이란 꾸준히 '마음의 할례'를 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는 비진리, 악, 불의, 불법 등 죄를 버리고 성결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는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나가는 충성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고백했던 사도 바울처럼 비진리에 속한 자신의 모습을 철저히 죽이고 성결되는 것이 바로 영적인 충성이지요. 마음의 할례를 끊임없이 해 나가면 사명을 감당하는 충성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어떤 어려움이 오거나 마음의 연단이 있다 해도 그것 때문에 사명을 놓지 않지요. 사명 감당은 하나님과 나와의 약속이기 까닭입니다. 반면에 마음의 할례를 소홀히 하면 어떤 유혹이나 어려움을 만날 때 자신의 마음을 지키지 못합니다. 하나님과의 약속도 헌신짝처럼 버리고 사명을 놓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은혜가 회복되면 다시 열심히 하기를 반복하지요. 이렇게 신앙에 기복이 있으면 열심히 사명을 감당한다 해도 충성스럽다는 말을 듣지 못합니다. 따라서 충성의 열매는 마음의 죄악을 벗어버리는 영적인 충성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3. 하나님 뜻에 맞도록 순종하는 충성
잠언 25장 13절에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 했습니다. 아무리 맡은 분야에 열심을 낸다 해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한다면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할 수 없습니다. 주인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 이유는 주로 자기 생각에 맞지 않거나 사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주인을 섬기는 것 같아도 자기 생각과 욕심을 좇아 일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주인의 뜻을 저버릴 수 있습니다. 다윗의 친척이요 군대장관이던 요압은 다윗이 어려울 때마다 곁을 지키며 생사고락을 같이했습니다. 지혜도 있고 용맹해 다윗이 원하는 일들을 잘 처리해 주곤 했지요. 암몬 사람의 성을 취할 때는 자신이 거의 다 정복한 후 마지막 순간에 다윗이 취하게 하여 그 공로를 다윗에게 돌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요압은 자기 생각이나 유익에 맞지 않을 때는 다윗의 뜻을 어기곤 했지요. 아브넬이 항복하겠다고 찾아왔을 때 다윗은 민심 수습을 위해 그를 환대해 돌려보냈지만 요압은 아브넬을 뒤쫓아가 죽입니다. 예전에 전투에서 아브넬이 자신의 동생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했을 때도 너그럽게 대하라는 다윗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압살롬을 죽이지요. 이처럼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거역하니 다윗에게는 요압이 늘 부담스러운 존재였습니다. 결국 요압은 솔로몬에게 반역하다가 죽고 맙니다. 평생 다윗을 섬겼지만 반역자로서 일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무엇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보다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순종하여 충성할 때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하지 못하고, 그 결과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4. 모든 분야에서 두루 충성하는 온 집에 충성
자신이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두루 충성하는 것을 온 집에 충성한다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로서, 교회의 양 떼로서, 직분자로서, 가정, 직장, 학교의 구성원으로서의 본분을 다할 때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이지요. '몸은 하나인데 직분이 많으면 어떻게 모든 분야에 충성할 수 있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진리로 변화되는 만큼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비록 적은 시간을 투자한다 해도 모든 것을 진리로 심을 때는 반드시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마음에 선을 이룬 사람은 어느 한 분야에 치우치지 않습니다. 자신이 맡은 분야가 많다 해도 한 가지도 소홀히 하는 일이 없지요. 매사에 최선을 다해 정성껏 주변을 돌아봅니다. 그러면 주변 사람들도 그 진실을 느끼므로 함께해 주지 못한다고 서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을 써 줘서 고맙게 여기지요. 이렇게 마음에 선이 있는 만큼 온 집에 충성할 수 있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도 이룰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편 101편 6절에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 했습니다. 죄를 버리고 진리 안에서 마음의 성결을 이루며 온 집에 충성한 사람은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충성의 열매를 맺어 완전한 길로 행하며 하나님 나라에 기둥같이 쓰일 뿐 아니라 하나님 보좌 가까이에 거하는 영광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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