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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ë…„ 7ì›” 2ì¼ ìˆ˜ìš”ì¼ ì˜¤ì „ 1:56
 
 

ì„±íƒ„ì ˆì˜ ì°¸ëœ ì˜ë¯¸ë¥¼ 정확히 아십니까?
Ãֽо÷µ¥ÀÌÆ®
"지극히 ë†’ì€ ê³³ì—서는 하나님께 ì˜ê´‘ì´ìš” ë•…ì—서는 기ë»í•˜ì‹¬ì„ ìž…ì€ ì‚¬ëžŒë“¤ ì¤‘ì— í‰í™”로다 하니ë¼"
(ëˆ„ê°€ë³µìŒ 2:14) ...
       
 
  
 

'ì‹­ìžê°€ì˜ ë„' 시리즈 15 - ì˜ˆìˆ˜ë‹˜ì˜ ê°€ìƒì¹ 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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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ë…„ 8ì›” 1ì¼ ì¼ìš”ì¼


"예수께서… ê·¸ 모친께 ë§ì”€í•˜ì‹œë˜ ì—¬ìžì—¬ 보소서 아들ì´ë‹ˆì´ë‹¤ 하시고
ë˜ ê·¸ ì œìžì—게 ì´ë¥´ì‹œë˜ ë³´ë¼ ë„¤ 어머니ë¼â€¦ ê°€ë¼ì‚¬ëŒ€ ë‚´ê°€ 목마르다…"(ìš”í•œë³µìŒ 19:26~29)
"제구시 즈ìŒì— 예수께서 í¬ê²Œ 소리 질러 ê°€ë¼ì‚¬ëŒ€ 엘리 엘리 ë¼ë§ˆ 사박다니 하시니…"(ë§ˆíƒœë³µìŒ 27:46)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께서 ì‹­ìžê°€ì— 달려 유언처럼 마지막으로 남기신 ì¼ê³± 가지 ë§ì”€ì´ 바로 ê°€ìƒì¹ ì–¸(架上七言)입니다. 지난 í˜¸ì— ì´ì–´ 예수님께서 남기신 ê°€ìƒì¹ ì–¸ 중 ì œ3~5ì–¸ì— ëŒ€í•´ 살펴보겠습니다.


1. ì œ3ì–¸ "ì—¬ìžì—¬ 보소서 아들ì´ë‹ˆì´ë‹¤", "ë³´ë¼ ë„¤ 어머니ë¼"

ìš”í•œë³µìŒ 19장 26ì ˆì— "예수께서 ê·¸ 모친과 사랑하시는 ì œìžê°€ ê³ì— 섰는 ê²ƒì„ ë³´ì‹œê³  ê·¸ 모친께 ë§ì”€í•˜ì‹œë˜ ì—¬ìžì—¬ 보소서 아들ì´ë‹ˆì´ë‹¤ 하시고" 했습니다. 여기서 아들ì´ëž€ ê³ì— ì„  사랑하는 ì œìž ìš”í•œì„ ê°€ë¦¬í‚¤ëŠ” 것으로서 예수님께서는 ë™ì •ë…€ 마리아ì—게 ìš”í•œì„ ì•„ë“¤ì²˜ëŸ¼ 여기ë¼ê³  ë§ì”€í•˜ì‹­ë‹ˆë‹¤.
ê·¸ëŸ°ë° ì˜ˆìˆ˜ë‹˜ê»˜ì„œ ìžì‹ ì„ 낳아 준 마리아를 향해 '어머니'ë¼ ë¶€ë¥´ì§€ 않고 'ì—¬ìžì—¬'ë¼ê³  부르신 ì´ìœ ëŠ” 무엇ì¼ê¹Œìš”? 성경ì—는 예수님께서 ë™ì •ë…€ 마리아를 '어머니'ë¼ê³  부르신 기ë¡ì´ 전혀 없습니다.
'모친'ì´ë¼ëŠ” í‘œí˜„ì€ ìš”í•œë³µìŒì„ 기ë¡í•œ ì œìž ìš”í•œì˜ ìž…ìž¥ì—서 기ë¡í•œ 것입니다. ìš”í•œë³µìŒ 2장ì—는 예수님께서 ê³µìƒì• ë¥¼ 시작하신 í›„ì— ë¬¼ë¡œ í¬ë„주를 만드시는 첫 표ì ì´ 기ë¡ë¼ 있습니다. ì´ë•Œë„ ë™ì •ë…€ 마리아를 "ì—¬ìžì—¬"ë¼ê³  부르셨지요. ì´ê°™ì´ ì‹­ìžê°€ë¥¼ 통한 구ì›ì˜ 섭리를 완성하고 ê³µìƒì• ë¥¼ 마ê°í•˜ëŠ” ìžë¦¬ì— ì´ë¥´ê¸°ê¹Œì§€ 예수님께서는 마리아ì—게 'ì—¬ìžì—¬'ë¼ê³  부르심으로 구세주로서 ì´ ë•…ì— ì˜¨ ìžì‹ ì„ 알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ì˜ì› 전부터 ì˜ì› 후까지 스스로 계신 ë¶„ì´ë©°(ì¶œ 3:14),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근본 하나ì´ë©° 삼위ì¼ì²´ 하나님 중 한 분입니다. ì´ëŸ¬í•œ 예수님께서 í”¼ì¡°ë¬¼ì¸ ë§ˆë¦¬ì•„ì—게 '어머니'ë¼ ë¶€ë¥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유전ì ìœ¼ë¡œë„ 마리아는 ì˜ˆìˆ˜ë‹˜ì˜ ì–´ë¨¸ë‹ˆê°€ ë  ìˆ˜ 없습니다. ì‚¬ëžŒì´ ìž‰íƒœë  ë•ŒëŠ” ì•„ë²„ì§€ì˜ ì •ìžì™€ ì–´ë¨¸ë‹ˆì˜ ë‚œìžê°€ 결합하게 ë˜ëŠ”ë° ì˜ˆìˆ˜ë‹˜ê»˜ì„œëŠ” ë§ˆë¦¬ì•„ì˜ ëª¸ì„ ë¹Œë ¸ì„ ë¿ ì„±ë ¹ì˜ ëŠ¥ë ¥ìœ¼ë¡œ 잉태ë˜ì…¨ê¸° 때문입니다. 아기가 ì¸íë² ì´í„° 안ì—서 ìžëžë‹¤ê³  해서 ì¸íë² ì´í„°ê°€ ì•„ê¸°ì˜ ë¶€ëª¨ê°€ ë  ìˆ˜ 없는 것과 ê°™ì´ ë§ˆë¦¬ì•„ê°€ ì˜ˆìˆ˜ë‹˜ì˜ ì–´ë¨¸ë‹ˆê°€ ë  ìˆ˜ 없는 것입니다.
바로 ì´ëŸ¬í•œ ë§¥ë½ì—서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를 ì–´ë¨¸ë‹ˆë¼ ë¶€ë¥´ì§€ 않고 'ì—¬ìžì—¬'ë¼ê³  표현하신 것입니다. ë”°ë¼ì„œ 오늘날 í•˜ë‚˜ë‹˜ì˜ ìžë…€ë“¤ì´ ë™ì •ë…€ 마리아를 ì£¼ë‹˜ì˜ ê±°ë£©í•œ 어머니ë¼ê³  표현한다거나 마리아 í˜•íƒœì˜ ìƒì„ 만들어 ê·¸ ì•žì— ê²½ë°°í•˜ëŠ” ê²ƒì´ ì–¼ë§ˆë‚˜ ì§„ë¦¬ì— í•©ë‹¹ì¹˜ 않ì€ì§€ë¥¼ 알아야 합니다(ì¶œ 20:4).
예수님께서는 ì‹­ìžê°€ì— 못 박혀 죽어 가는 ìžì‹ ì˜ ëª¨ìŠµì„ ë³´ê³  마ìŒì´ 찢어지는 ê³ í†µì„ ë‹¹í•˜ëŠ” ë™ì •ë…€ 마리아를 위로하며, 사랑하는 ì œìž ìš”í•œì—게 í•˜ë‚˜ë‹˜ì˜ ìžë…€ë¡œì„œ 마리아를 어머니처럼 섬겨야 í•¨ì„ ì•Œë ¤ 주셨습니다. ì‹­ìžê°€ì— 못 박혀 ë§í•  수 없는 ê³ í†µì„ ê²ªëŠ” 중ì—ë„ ì‚¬í›„ì˜ ì¼ê¹Œì§€ 살피는 ì£¼ë‹˜ì˜ ì‚¬ëž‘ì„ ëŠë‚„ 수 있지요. 그리하여 ìš”í•œì€ ì˜ˆìˆ˜ë‹˜ì˜ ë§ì”€ëŒ€ë¡œ 마리아를 ì§‘ì— ëª¨ì‹œê³  친어머니처럼 섬기며 살게 ë©ë‹ˆë‹¤.
마리아는 ë™ì •녀로서 ì˜ˆìˆ˜ë‹˜ì„ ë‚³ì€ í›„, ë‚¨íŽ¸ì¸ ìš”ì…‰ê³¼ì˜ ì‚¬ì´ì— 여러 ìžë…€ë¥¼ 낳았습니다. 그런ë°ë„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를 ê·¸ ìžë…€ë“¤ì—게 ë¶€íƒí•˜ì§€ 않으시고 ì œìž ìš”í•œì—게 ë¶€íƒí•˜ì‹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깨우ì³ì•¼ í•  ê²ƒì€ ë¬´ì—‡ì¼ê¹Œìš”?
빌립보서 3장 20ì ˆì— "ì˜¤ì§ ìš°ë¦¬ì˜ ì‹œë¯¼ê¶Œì€ í•˜ëŠ˜ì— ìžˆëŠ”ì§€ë¼ ê±°ê¸°ë¡œì„œ 구ì›í•˜ëŠ” ìž ê³§ 주 예수 그리스ë„를 기다리노니" ë§ì”€í•œ 대로 구ì›ë°›ì€ í•˜ë‚˜ë‹˜ì˜ ìžë…€ë“¤ì€ í•˜ëŠ˜ì— ì†í•œ 사람ì´ë¼ëŠ” 사실입니다. ì£¼ë‹˜ì„ ì˜ì ‘하여 ì²œêµ­ì˜ ìƒëª…ì±…ì— ì´ë¦„ì´ ê¸°ë¡ëœ í•˜ë‚˜ë‹˜ì˜ ìžë…€ë“¤ì€ í•˜ë‚˜ë‹˜ì„ ì•„ë²„ì§€ë¡œ 섬기는 ì˜ì ì¸ 가족ì´ì§€ìš”.
우리가 ìœ¡ì˜ ë¶€ëª¨ë¥¼ 통해 ì´ ë•…ì— íƒœì–´ë‚¬ì§€ë§Œ ë¶€ëª¨ì˜ ì •ìžì™€ 난ìžë„ 하나님께서 주신 것ì´ìš”, ì¡°ìƒì„ 거슬러 올ë¼ê°€ë©´ ì¸ë¥˜ì˜ ì‹œì¡°ì¸ ì•„ë‹´ì˜ ìƒëª…ë„ í•˜ë‚˜ë‹˜ê»˜ë¡œë¶€í„°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ì•„ë‹´ì„ ë¹šìœ¼ì‹œê³  ìƒê¸°ë¥¼ 불어넣으셨으니 근본ì ìœ¼ë¡œ ìš°ë¦¬ì˜ ìƒëª…ì€ í•˜ë‚˜ë‹˜ê»˜ë¡œë¶€í„° 온 것ì´ì§€ìš”. ë˜í•œ ì‚¬ëžŒì´ ê²°í˜¼í•˜ì—¬ ìžë…€ë¥¼ 낳는다고 í•´ë„ í•˜ë‚˜ë‹˜ê»˜ì„œ í—ˆë½í•˜ì‹œì§€ 않으면 ìƒëª…ì„ ìž‰íƒœí•  수 없고 ìž‰íƒœëœ ì•„ì´ì—게 ì˜í˜¼ì„ 주시는 ê²ƒë„ í•˜ë‚˜ë‹˜ì˜ ì†Œê´€ì´ê¸° 때문입니다.
사람ì—게 ì˜í˜¼ì„ 주시고 ìƒì‚¬í™”ë³µì„ ì£¼ê´€í•˜ì‹œëŠ” ë¶„ë„ í•˜ë‚˜ë‹˜ì´ì‹œë©°, ì´ëŸ° 하나님께서 ìš°ë¦¬ì˜ ì˜ì ì¸ 아버지가 ë˜ì‹œëŠ” 것입니다. ë§Œì¼ í•˜ë‚˜ë‹˜ì„ ë¯¿ì§€ 않고 ì„¸ìƒ ì •ìš•ì„ ë”°ë¼ ì‚´ì•„ê°„ë‹¤ë©´ ì´ëŠ” ë§ˆê·€ì˜ ìžë…€ì´ë¯€ë¡œ í•˜ë‚˜ë‹˜ì„ '아버지'ë¼ ë¶€ë¥¼ 수 없습니다(ìš” 8:44). 그러니 ì´ ë•…ì—서 혈연관계로 맺어진 가족ì´ë¼ í•´ë„ ì£¼ë‹˜ì„ ë¯¿ì§€ 않는 ê°€ì¡±ì€ ì²œêµ­ì—서 ì˜ì›ížˆ 함께할 수 있는 ê²ƒì´ ì•„ë‹ˆì§€ìš”.
ì˜ˆìˆ˜ë‹˜ê»˜ì„œë„ "누구든지 í•˜ëŠ˜ì— ê³„ì‹  ë‚´ ì•„ë²„ì§€ì˜ ëœ»ëŒ€ë¡œ 하는 ìžê°€ ë‚´ 형제요 ìžë§¤ìš” 모친ì´ë‹ˆë¼" ë§ì”€í•˜ì‹œë©° ì°¸ëœ ê°€ì¡±, ì˜ì ì¸ ê°€ì¡±ì— ëŒ€í•´ 알려 주셨습니다(마 12:50). ìœ¡ì˜ ê°€ì¡±ì„ ì‚¬ëž‘í•˜ê³  ì„¬ê¸°ë˜ í•˜ë‚˜ë‹˜ ì•žì— í•©ë‹¹í•œ ì˜ì ì¸ 사랑ì´ì–´ì•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í•˜ë‚˜ë‹˜ì„ í›¼ë°©í•˜ê³  하나님 뜻과 반대ë˜ê²Œ 행하는 가족ì—게 맞춰준다면 ê·¸ê²ƒì€ ì°¸ëœ ì‚¬ëž‘ì´ ì•„ë‹ˆê¸° 때문입니다. 그러니 반드시 진리 안ì—서 사랑하고 섬겨야 하지요. ë˜í•œ ì§„ì • ê°€ì¡±ì„ ì‚¬ëž‘í•œë‹¤ë©´ 무엇보다 함께 구ì›ë°›ê³  ì²œêµ­ì— ê°ˆ 수 있ë„ë¡ ì „ë„해야 합니다. 그래서 ì˜ì›í•œ 천국ì—서 함께 ì‚´ 수 있는 진정한 ê°€ì¡±ì´ ë˜ì–´ì•¼ 하는 것입니다.


2. ì œ4ì–¸ "엘리 엘리 ë¼ë§ˆ 사박다니"

ë§ˆíƒœë³µìŒ 27장 46ì ˆì— "제구시 즈ìŒì— 예수께서 í¬ê²Œ 소리 질러 ê°€ë¼ì‚¬ëŒ€ 엘리 엘리 ë¼ë§ˆ 사박다니 하시니 ì´ëŠ” ê³§ ë‚˜ì˜ í•˜ë‚˜ë‹˜, ë‚˜ì˜ í•˜ë‚˜ë‹˜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ì´ê¹Œ 하는 뜻ì´ë¼" 했습니다. ë§ˆê°€ë³µìŒ 15장 25ì ˆì—는 "때가 제삼시가 ë˜ì–´ ì‹­ìžê°€ì— 못 박으니ë¼" 했으니 예수님께서 ì‹­ìžê°€ì— 못 박혀 혹ë…한 ê³ í†µì„ ë°›ìœ¼ë©° 여섯 시간째 매달려 계셨다는 ì‚¬ì‹¤ì„ ì•Œ 수 있지요. ê³§ ìš°ë¦¬ë‚˜ë¼ ì‹œê°„ìœ¼ë¡œ 환산하면, 오전 9ì‹œì— ì‹­ìžê°€ì— 못 박혀 달린 ì§€ 여섯 ì‹œê°„ì´ ì§€ë‚œ 오후 3시 즈ìŒì— í° ì†Œë¦¬ë¡œ "엘리 엘리 ë¼ë§ˆ 사박다니"ë¼ê³  외치신 것입니다.
혹ìžëŠ”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ì´ê¹Œ" 하신 ë§ì”€ì„ 예수님께서 심한 고통으로 ì¸í•´ í•˜ë‚˜ë‹˜ì„ ì›ë§í•˜ì‹œëŠ” 것으로 ì˜¤í•´í•˜ê¸°ë„ í•©ë‹ˆë‹¤.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í•˜ë‚˜ë‹˜ì„ ì›ë§í•˜ì‹œê±°ë‚˜ 고통으로 ì¸í•´ 탄ì‹í•˜ì‹  ê²ƒì´ ê²°ì½” 아닙니다. ì´ ë•…ì— ì˜¤ì‹œê¸° 전부터 ì´ë¯¸ 앞으로 ë  ì¼ì„ 다 아셨고 ì‹­ìžê°€ì˜ ê³ í†µì— ëŒ€í•´ì„œë„ ë‹¤ 아셨지요. 그럼ì—ë„ ì•„ë²„ì§€ì˜ ì„­ë¦¬ë¥¼ ì´ë£¨ì‹œê¸° 위해 ê¸°êº¼ì´ ì‹­ìžê°€ì˜ ê¸¸ì„ ì„ íƒí•˜ì…¨ìŠµë‹ˆë‹¤. ë”구나 모든 ê³ í†µì´ ëë‚  때가 ë˜ì—ˆëŠ”ë°, ì´ì œ 와서 í•˜ë‚˜ë‹˜ì„ ì›ë§í•˜ì‹¤ 리가 없지요. ë”°ë¼ì„œ ì´ ë§ì”€ì—는 중요한 ì˜ì ì¸ ì˜ë¯¸ê°€ 담겨 있는 것입니다.
먼저, ì´ ë§ì”€ì„ 하실 때 예수님께서는 "í¬ê²Œ 소리 질러" ë§ì”€í•˜ì…¨ë‹¤ê³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밤새 ëŒë ¤ 다니며 ì‹¬ë¬¸ì„ ë°›ìœ¼ì…¨ê³ , 심한 채ì°ì§ˆì„ 당하셨으며, ì‹­ìžê°€ì— 못 박힌 채 여섯 ì‹œê°„ì„ í”¼ í˜ë¦¬ë©° 매달려 계셨습니다. ì´ì²˜ëŸ¼ 소리 지르실 만한 ê¸°ìš´ì´ ë‚¨ì•„ 있지 ì•Šì€ ìƒí™©ìž„ì—ë„ íž˜ì„ ë‹¤í•´ í° ì†Œë¦¬ë¡œ ë§ì”€í•˜ì‹  ì´ìœ ëŠ” 무엇ì¼ê¹Œìš”? 모든 ì‚¬ëžŒì´ ì´ ë§ì”€ì„ 듣고 '왜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버림받으셔야 했는지, 참혹한 ì‹­ìžê°€ì˜ ì²˜í˜•ì„ ë‹¹í•˜ì…”ì•¼ë§Œ 했는지'를 깨닫기 ì›í•˜ì…¨ê¸° 때문입니다.
ê·¸ 당시 예수님께서는 ì €ì£¼ë°›ì€ ì‹­ìžê°€ì— 달리시기까지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으셨습니다. ì´ëŠ” ì£„ì¸ ëœ ëª¨ë“  ì¸ë¥˜ì˜ 죄를 대ì†í•˜ì‹œê¸° 위함ì´ì—ˆì§€ìš”. 모든 ì‚¬ëžŒì´ ìœ¨ë²•ì˜ ì €ì£¼ë¡œ ì¸í•´ 하나님으로부터 ë²„ë¦¼ë°›ì„ ìš´ëª…ì´ì—ˆê¸°ì— 예수님께서 대신 저주를 받아 버림받으신 것입니다. ì´ëŸ° ì˜ë¯¸ë¥¼ 모든 ì‚¬ëžŒì´ ì•Œ 수 있ë„ë¡ ì˜ˆìˆ˜ë‹˜ê»˜ì„œëŠ” 온 íž˜ì„ ë‹¤í•´ ì™¸ì¹˜ì…¨ë˜ ê²ƒìž…ë‹ˆë‹¤.
ë˜ í•œ 가지 ì´ìœ ëŠ” 하나님께서 죄ì¸ë“¤ì„ 위해 ë…ìƒìžê¹Œì§€ ë‚´ì–´ 주셨건만 여전히 ìˆ˜ë§Žì€ ì‚¬ëžŒì´ ì´ë¥¼ 알지 못하고 세ìƒê³¼ ì§í•´ 사ë§ì˜ 길로 가기 때문입니다. 모든 ì˜í˜¼ì´ 예수님께서 ì‹­ìžê°€ì— 달리신 ì´ìœ ë¥¼ 알아서 구세주로 ì˜ì ‘하고 ìƒëª…ì„ ì–»ê¸° ì›í•˜ì…”서 무지한 ì‚¬ëžŒë“¤ì´ í•˜ë‚˜ë‹˜ ì‚¬ëž‘ì„ ê¹¨ë‹¬ì„ ìˆ˜ 있ë„ë¡, ë˜í•œ 회개해 구ì›ì˜ 길로 ëŒì´ì¼œì•¼ í•¨ì„ ê°„ì ˆížˆ ì™¸ì¹˜ì…¨ë˜ ê²ƒìž…ë‹ˆë‹¤.
ê·¸ëŸ°ë° ì„±ê²½ì„ ë³´ë©´ 예수님께서는 í•˜ë‚˜ë‹˜ì„ ë¶€ë¥´ì‹¤ 때 í•­ìƒ ì¹œê·¼í•˜ê²Œ "아버지"ë¼ê³  부르셨습니다. ìœ ë… ë³¸ë¬¸ì—서만 "ë‚˜ì˜ í•˜ë‚˜ë‹˜"ì´ë¼ê³  부르셨지요. 예수님께서는 ì¸ë¥˜ì˜ 모든 저주를 대신 지시고 죄ì¸ì˜ 신분으로 ì‹­ìžê°€ì— 달리셨으니 거룩하신 í•˜ë‚˜ë‹˜ì„ ê°ížˆ '아버지'ë¼ ë¶€ë¥´ì‹¤ 수가 ì—†ì—ˆë˜ ê²ƒìž…ë‹ˆë‹¤.
마찬가지로 주를 믿는다 하면서 여전히 죄 ê°€ìš´ë° ì‚´ 때는 í•˜ë‚˜ë‹˜ì˜ ìžë…€ë¡œì„œ 당당하게 기ë„í•  수 없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ì‚´ì§€ 않고 í•˜ë‚˜ë‹˜ì˜ ëŒ€ì , ì›ìˆ˜ 마귀 ì‚¬ë‹¨ì´ ë¯¸í˜¹í•˜ëŠ” 대로 살아가면서 í•˜ë‚˜ë‹˜ì„ ë‹´ëŒ€í•˜ê²Œ '아버지'ë¼ ë¶€ë¥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ì‚¬ëžŒì´ ì˜ˆìˆ˜ 그리스ë„를 ì˜ì ‘í•´ 죄를 용서받고 ë¹› ê°€ìš´ë° í–‰í•¨ìœ¼ë¡œ í•˜ë‚˜ë‹˜ì„ ì•„ë²„ì§€ë¼ ë¶€ë¥´ëŠ” ì°¸ ìžë…€ê°€ ë˜ê¸°ë¥¼ 간절히 ì›í•˜ì‹­ë‹ˆë‹¤.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ìš°ë¦¬ì˜ ì£„ë¡œ ì¸í•´ 버림받아 나무 ì‹­ìžê°€ì— 달려 죽으셨ìŒì„ ë§ˆìŒ ì¤‘ì‹¬ì—서 믿는다면, ë” ì´ìƒ 죄 ê°€ìš´ë° ê±°í•˜ì§€ ë§ê³  거룩히 êµ¬ë³„ëœ ì‚¶ì„ ì‚´ë©´ì„œ í•˜ë‚˜ë‹˜ì„ '아버지'ë¼ ë¶€ë¥¼ 수 있는 ìžë…€ë“¤ì´ ë˜ì–´ì•¼ 합니다. ë˜í•œ ì‹­ìžê°€ì˜ ë„를 열심히 전하여 진리를 알지 못하고 사ë§ìœ¼ë¡œ 가는 ì˜í˜¼ë“¤ì„ 구ì›ì˜ 길로 ì¸ë„해야 í•  것입니다.


3. 제5언 "내가 목마르다"

ì‚¬ëžŒì´ í”¼ë¥¼ ë§Žì´ í˜ë¦¬ë©´ 심한 ê°ˆì¦ì„ ëŠë¼ê²Œ ë©ë‹ˆë‹¤. ë”구나 예수님께서는 오랜 ì‹œê°„ì„ ëœ¨ê±°ìš´ 햇볕 아래서 ì‹­ìžê°€ì— 매달려 계신 ìƒíƒœì˜€ì§€ìš”. 그러나 ì´ë•Œ 예수님께서 "목마르다" 하신 ê²ƒì€ ë‹¨ìˆœížˆ ê°ˆì¦ì„ 호소하시는 ë§ì”€ì´ ì•„ë‹ˆë¼ ì˜ì ì¸ ì˜ë¯¸ê°€ 담겨 있습니다. ê³§ ì˜ˆìˆ˜ë‹˜ì˜ í•ê°’ì„ ì°¾ì•„ë“œë¦¼ìœ¼ë¡œ ê·¸ ê°ˆì¦ì„ 해소시켜 달ë¼ê³  당부하시는 ë§ì”€ìž…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ì˜ˆìˆ˜ë‹˜ì˜ í•ê°’ì„ ì°¾ì•„ë“œë¦´ 수 있ì„까요? 예수님께서 피 í˜ë¦¬ì‹  ê¹Œë‹­ì€ ì£„ì¸ ëœ ì¸ë¥˜ë¥¼ 구ì†í•˜ì‹œê¸° 위함ì´ë¯€ë¡œ ì˜ˆìˆ˜ë‹˜ì˜ í•ê°’ì„ ì°¾ì•„ë“œë¦¬ëŠ” ê²ƒì€ ì§€ì˜¥ìœ¼ë¡œ ê°ˆ ì˜í˜¼ë“¤ì„ ì „ë„하여 천국으로 ì¸ë„하는 것입니다. ì§ì ‘ ì „ë„하는 것 외ì—ë„ ì˜í˜¼ 구ì›ì„ 위해 기ë„하거나 ì„ êµë¥¼ 위해 ë¬¼ì§ˆì„ ì‹¬ëŠ” 등 ê°„ì ‘ì ìœ¼ë¡œ ì˜í˜¼ì„ 구ì›í•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ë‚´ê°€ 목마르다" ë§ì”€í•˜ì‹œë‹ˆ ì–´ë–¤ ì‚¬ëžŒì´ í•´ìœµì— ì ì‹  ì‹  í¬ë„주를 ì˜ˆìˆ˜ë‹˜ì˜ ìž…ì— ëŒ€ì–´ 드렸습니다. ì´ë•Œ ì‹  í¬ë„주를 ìž…ì— ëŒ€ì‹  ê²ƒì€ ê°ˆì¦ì„ 해결하려는 ê²ƒì´ ì•„ë‹ˆë¼ êµ¬ì•½ì˜ ì˜ˆì–¸(시 69:21)대로 ì‹  í¬ë„주를 맛보셔야 하는 ì˜ì ì¸ ì˜ë¯¸ê°€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ì‹  í¬ë„주를 맛보신 ê²ƒì€ ì˜ì ìœ¼ë¡œ ì–´ë–¤ ì˜ë¯¸ì¼ê¹Œìš”? ì´ëŠ” 예수님께서 ì‹  í¬ë„주를 드시고 우리ì—게는 새 í¬ë„주를 마시게 하셨다는 ì‚¬ì‹¤ì„ ë‚˜íƒ€ëƒ…ë‹ˆë‹¤. ì‹  í¬ë„주, ê³§ 오래ë˜ì–´ ë¬µì€ í¬ë„주는 êµ¬ì•½ì˜ ìœ¨ë²•ì„ ì˜ë¯¸í•˜ë©° 새 í¬ë„주는 예수님으로 ì¸í•´ ì™„ì„±ëœ ì‹ ì•½ì˜ ì‚¬ëž‘ì˜ ë²•ì„ ì˜ë¯¸í•˜ì§€ìš”.
êµ¬ì•½ì˜ ìœ¨ë²•ì— ì˜í•˜ë©´ 죄ì¸ë“¤ì€ 반드시 ì£„ì— ë”°ë¥¸ í˜•ë²Œì„ ë°›ì•„ì•¼ 하고 죄 ì‚¬í•¨ì„ ë°›ìœ¼ë ¤ë©´ 매번 ì§ìŠ¹ì„ ìž¡ì•„ í”¼ì˜ ì œì‚¬ë¥¼ 드려야 합니다. ê·¸ëŸ°ë° ì˜ˆìˆ˜ë‹˜ê»˜ì„œ 친히 ì†ì£„ ì œë¬¼ì´ ë˜ì–´ ì‹­ìžê°€ì— 죽으심으로 ìœ¨ë²•ì˜ ëª¨ë“  저주를 ì†ëŸ‰í•˜ì…¨ìœ¼ë‹ˆ, ê³§ 우리를 위해 ì‹  í¬ë„주를 받으신 것ì´ì§€ìš”. ë”°ë¼ì„œ ì´ë¥¼ 믿고 ë§ˆìŒ ì¤‘ì‹¬ì—서 회개하면 죄를 ìš©ì„œë°›ì„ ìˆ˜ 있게 ë˜ëŠ”ë°, ì´ê²ƒì´ 바로 새 í¬ë„주를 마시는 것ì´ìš” 예수님께서는 ì´ ì‚¬ì‹¤ì„ ê¹¨ìš°ì³ ì£¼ì‹œê³ ìž "ë‚´ê°€ 목마르다" ë§ì”€í•˜ì‹œë©° ì‹  í¬ë„주를 받아 ìž…ì— ëŒ€ì‹  것입니다.

사랑하는 ì„±ë„ ì—¬ëŸ¬ë¶„,
ê°€ìƒì¹ ì–¸ì˜ ì˜ì ì¸ ì˜ë¯¸ë¥¼ 마ìŒì— ê¹Šì´ ìƒˆê²¨ 날마다 하나님 ì•žì— í•©ë‹¹í•œ ì‚¶ì„ ì‚´ë©°, 장차 천국ì—ì„œë„ ê°€ìž¥ ì˜ê´‘스러운 처소ì—서 ì˜ì›ížˆ 주님과 함께 거하시기를 ì£¼ë‹˜ì˜ ì´ë¦„으로 ì¶•ì›í•©ë‹ˆ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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