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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누가복음 2:14) ...
       
 
  
 

'선' 시리즈 8 - 사도 바울의 선(善)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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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1일 일요일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린도전서 15:9~10)


신약 시대 최고의 사도로 손꼽히는 사도 바울은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석학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 교육을 받은 독실한 유대교 신자로서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대단했지요. 그래서 한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해 옥에 가두기에 앞장섰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순교하는 현장에서 그를 죽이는 사람들의 뜻에 찬성하며 그들의 옷을 지키기까지 했지요.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 회심한 후에는 수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며 많은 교회를 세웠을 뿐 아니라, 세계 선교의 기반을 마련한 이방인의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원수를 위해 생명도 줄 수 있는 최고의 선을 이뤄, 가는 곳마다 권능의 역사를 크게 베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감동시켰던 사도 바울의 선은 과연 무엇일까요?


1. 옳은 것을 깨우치면 변개치 않는 중심

사도 바울은 의가 아주 강한 사람으로 자신이 가진 지식과 의로써 상대를 누르기 좋아하고, 변론을 즐겨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라는 것이 도무지 자기 의에는 맞지 않았지요. 그냥 묵인하고 지나칠 수 없었던 그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니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자기 의가 강하지만 한 번 옳은 것을 깨우치면 변개치 않는 중심임을 아셨습니다. 때가 되자 바울에게 은혜의 체험을 허락하시지요. 다메섹이라는 도시에까지 주님을 믿는 자들을 잡으러 원정을 가던 바울에게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께서는 변화되기 전 바울의 이름인 사울을 부르며 빛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하셨지요.
이 일이 있은 후 바울은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아나니아를 통해 자신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알게 되지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게 하기 위해 자신이 선택됐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제 참된 것을 깨달은 바울은 완전히 변화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먼저 믿은 사람들 중에서 바울이 변화된 것을 의심하며 여전히 경계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바울은 개의치 않았지요.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켰습니다(행 9:22). 이제는 다메섹에 가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킨 것입니다.


2. 한 번 받은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개치 않는 마음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비밀과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신 주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게 되자 자신이 마치 죄인 중에 괴수처럼 여겨졌습니다. 자신의 모든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귀한 사명까지 주신 주님의 은혜에 깊은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었지요.
이 감사의 마음은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변하지 않았습니다. 모진 핍박과 어려움을 당하면 당할수록 더욱 깊고 진한 감사의 고백이 나왔지요. 사도 바울이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았는지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 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처럼 사도 바울은 죽도록 충성하며 고난을 받았지만 마음 중심에서는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사가 넘쳤습니다. 바로 이에 대해 바울이 고백한 내용을 잠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아무리 곤란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나를 죽이고자 하는 상황에 이른다 할지라도 내가 깊은 감옥에 있었다 할지라도 내가 파선의 위험 속에서 세월들을 지냈다 할지라도 그것은 내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나이다. 내가 예전에 그처럼 행했음에도 아버지께서 오히려 나를 영광스런 자리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상급을 바라보고 갈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내 중심에서 주를 찬양할 수밖에 없는 마음이었나이다. 파선하여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낼 때에도 내게는 어떤 두려움이나 마음의 요동함이 없었고 내가 행했던 모든 일을 가리어 주심에 감사하였으며 오히려 내게 많은 상급을 쌓게 하시며 주의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기뻐할 수 있었나이다. 또한 많은 사람이 나를 핍박하고 내게 고난을 가한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인해 내 마음이 낮아질 수 있었나이다. 내가 이 땅에서 지낸 고난의 시간은 길지 않았고 내가 받았던 고통은 고통이라 표현할 수 없지만 그 고통들이 내게는 더 채찍질이 되어 앞을 향해 달려갈 수 있었기에 감사와 기쁨이 넘쳐났었나이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만난 이후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죽도록 충성했습니다. 그러면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좋은 옷을 입지도 못했지요. 깊은 감옥이나 파선의 위험, 매를 맞고 돌에 맞는 등 많은 고난을 겪었으나 스스로 서럽게 생각하지 않았고 결코 낙심하거나 실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육체의 많은 고통과 핍박을 앞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채찍질로 여기고 중심에서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었지요. 더구나 자신과 같은 사람에게 주의 이름으로 핍박받아 천국에 상급 쌓을 기회를 주심에 더욱 감사했습니다.
바울의 고난에 비하면 고난이라고도 할 수 없는 작은 어려움에도 이내 절망하고 낙심하지 않았는지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간절히 기도하고 간구한 대로 어떤 일들이 되지 않을 때 절망하고 낙심하지는 않았는지요? 하나님 나라에 충성하고 모든 것을 드리기까지 헌신했으니 이제는 축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범사가 잘되는 형통한 복을 받았으면 좋겠는데 내 생각처럼 축복이 신속하게 임하지 않으니 혹여 마음이 슬퍼지지는 않았습니까?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여 이처럼 충성하는데 아버지는 왜 지켜 주시지 않았을까?' 하며 혹여 서운한 마음이 들지는 않았습니까? 또는 스스로 실망하여 '나는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인가 보다' 하는 육신의 생각으로 많은 분야에서 포기해 버리지는 않았는지요?
시험환난과 어떤 고난이 있다 해도 사도 바울과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습니다. 감히 하나님 앞에 "나는 이렇게 고난 받습니다", "힘듭니다" 말할 수 없으며, 이는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지요.
사도 바울은 주님을 만난 이후로 한 번도 주님의 은혜에 감사한 마음이 변하지 않았고 주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만난 이후로 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도 바울은 죽도록 충성하고 종국에는 순교의 자리에 이를 때에도 오직 감사의 고백을 올릴 수 있었지요.
'이제 내 생애가 이렇게 마감하는구나' 하고 착잡한 마음이나 회한이 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의 두려움으로 인한 경직된 심정은 더더욱 아니었지요. 오히려 죽음을 앞두고 너무나 보고 싶었던 주님을 이제 곧 뵈올 수 있다는 기쁨으로 가슴이 벅찼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음 앞에서 긴장하기 마련이지만 사도 바울은 소망으로 가득해 오히려 기쁨과 감사가 넘쳤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이 어떠한 고난을 받을 때에도, 심지어 생명을 잃는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마음이 참으로 곱고 선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좋은 일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은 물론이요, 어려움이 와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할 조건이 있을 때는 누구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현실에 어려움이 있다 해도 믿음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믿음의 시련을 통해 더욱 온전케 하심에 감사하고, 주님으로 인해 잠시 받는 고난을 장차 천국에서 비교할 수 없는 영광으로 갚아 주실 것을 믿으므로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고난을 허락하시고 이를 통해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께 항상 감사드리는 마음이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마음껏 연단하실 수 있었고, 결국 바울은 큰 권능을 나타내며 무수한 영혼을 구원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대사도가 될 수 있었지요.
그러므로 사도 바울처럼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에 대한 은혜와 감사가 변치 아니하며, 생명 다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귀한 일꾼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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