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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누가복음 2:14) ...
       
 
  
 

'선' 시리즈 15 - 엘리야의 선(善)_2


2130
2022년 8월 14일 일요일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누가복음 1:17)


엘리야는 본래부터 심히 겸비한 마음을 가졌고, 자기 의가 없어서 누구와도 부딪치지 않았습니다. 육적으로 볼 때는 매우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것 같지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한 마음을 아셨기에 그를 택해 구약시대의 큰 선지자로 세우셨습니다.
연단을 통해 강하고 담대해진 엘리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놀라운 이적과 기사를 나타냄으로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합니다. 이처럼 엘리야 선지자가 사명을 온전히 감당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사를 그의 후계자로 삼으시고 엘리야는 요단강에서 산 채로 하늘로 올리우셨습니다(왕하 2:11).
과연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한 엘리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성경 곳곳에는 엘리야가 신약시대에 세례 요한으로 왔음을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의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이 천국에서 큰 자라 인정받은 선은 무엇일까요?


1.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

엘리야는 이 땅에서 사역을 이룰 때 늘 하나님과 교통했습니다. 깊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밝히 깨닫기 위해 노력했지요. 유약한 성품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이루기 위해 그만큼 하나님께 매달려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위로부터 능력을 주심으로 엘리야의 심령을 강하게 붙들어 주셨지요.
이러한 체험을 통해 엘리야는 하나님의 권능을 더욱 사모하게 되었고, 약한 자신에게 큰 권능을 입혀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일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명하시면 순종함으로 이뤄 드렸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다 해주고 싶어 합니다.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는 일도 최선을 다하지요. 그런데 육적인 사랑은 세월이 지나고 환경이 바뀌면 마음과 행함이 변합니다. 자신이 해 준 만큼 상대에게도 받기를 원하지요. 그러나 엘리야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절대 변하지 않았고, 그 사랑을 행함과 진실함으로 온전히 나타냈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하나님 일을 이룰 때 어려운 일 앞에서는 자신의 성품 때문에 하지 못한다고 핑계를 대며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는 경우가 있지요. 이런 사람은 중심에서 주님을 믿고 진실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말씀대로(막 9:23)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뜨거우면 사람의 성품은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외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심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열왕기상 18장 19절에 "그런즉 보내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 오십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인을 갈멜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오게 하소서" 했습니다. 심히 유약한 성품이었던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 선지자 400인에게 불의 응답을 끌어내리는 대결을 제안한 것이지요. 하나님을 향한 불붙는 듯한 사랑이 있으니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숭배에 빠진 백성을 어찌하든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해 담대히 행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엘리야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더 밝히 깨닫고 정립할 수 있었습니다. 장성한 믿음의 분량인 아비의 믿음에 이르면 태초부터 계신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되지요. 그래서 이 땅에 있을 때 하나님에 대해 깊이 깨우침으로 무척 사모했는데, 마침내 산 채로 들림 받아 천국에 올라가 하나님을 친히 뵈었을 때 얼마나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했겠습니까?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더 밝히 깨닫고 정립했을 뿐 아니라 성자, 성령 하나님의 사명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지요. 특히 성자 하나님께서 구세주가 되시기 위해 낮고 천한 육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화목제물로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함을 알게 되었을 때는 주를 향한 사모함이 불붙는 것 같아 아버지 하나님께 "주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고백을 받으시고 엘리야에게 주의 길을 예비하는 큰 사명을 주셨지요. 바로 산 채로 들림 받아 하나님 곁에 있던 엘리야를 다시 이 땅으로 보내셔서 주를 향한 불붙는 마음으로 사명을 감당케 하신 것입니다.


2. 세례 요한으로 다시 태어나 주의 길을 예비한 선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다시 이 땅에 보내실 것과 그가 어떤 사명을 감당할 것까지 성경에 예언해 놓으셨습니다. 이사야 40장 3절에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했습니다.
말라기 4장 5~6절에는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했지요.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개념과는 전혀 다릅니다. 하늘에 올라간 사람이 다시 태어난 일은 인류 역사상 단 한 번 오직 엘리야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러면 회리바람을 타고 산 채로 승천한 엘리야는 어떻게 다시 이 땅에 태어날 수 있었을까요?
사람이 잉태된 지 6개월째가 되면 하나님께서 영을 보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길을 예비할 사람이 잉태될 때 그에게 보내 주시는 영 안에 엘리야의 마음을 담아 주셨지요. 바로 엘리야의 영 자체가 온 것이 아니라 '엘리야의 마음이 담긴 영'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셨기에 육의 부모의 기를 전혀 받지 않으셨으며, 잉태됨과 동시에 주어진 영 자체가 바로 예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의 경우는 예수님과 달리 육의 부모의 기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당시 가장 선하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잉태한 태아에게 엘리야의 마음이 담긴 영을 보내 주셨지요(눅 1:5~38).
이렇게 태어난 사람이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그래서 신구약 성경에 많은 선지자와 사도들, 제자들이 있지만 유독 세례 요한에 대해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요 1:6) 했습니다.
누가복음 1장 17절에는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가서 …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했습니다. 이는 세례 요한이 잉태되기 전, 천사장 가브리엘이 그의 아비가 될 제사장 사가랴에게 나타나 장차 태어날 아기에 대해 일러준 내용입니다.
누가복음 3장 4~6절에는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사람, 곧 주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가 세례 요한임을 확인해 주고 있지요.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이 바로 엘리야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제자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이 변화산에서 홀연히 변화되신 예수님을 목격하고 구세주로 오신 분임을 알게 되자 예수님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하고 여쭙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고 답변하시지요(마 17:10~12). 이어지는 13절에는 "그제야 제자들이 예수의 말씀 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로서 아무 흠도 점도 없으신 참 빛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산 채로 들림 받은 엘리야를 다시 이 땅에 보내어 메시아가 오기 전에 주의 길을 예비케 하셨습니다.
엘리야는 이 땅에서 살아 보았고, 천국의 영광 또한 누리고 있었기에 다시 이 땅에 내려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주님께서 장차 겪으실 일을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주를 위해 이 땅에 다시 내려오는 것이 조금도 꺼려지지 않았고 오히려 기쁨과 감사함으로 순종할 수 있었지요. 이처럼 엘리야가 말로만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을 온전히 나타내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지극한 선으로 여기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처음 주님을 만나 첫사랑이 뜨거울 때는 그 사랑이 너무도 크고 감사하여 "주님을 위해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내 생명, 나의 전부는 주님을 위해 드리길 원합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이 고백대로 행함으로 진실하게 보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지에 가서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라는 것도 아닌데,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도 못 하지요. 또한 전부를 달라고 하심도 아니요, 축복 주시기 위해 온전한 십일조를 내라 하시는데 그 말씀조차 순종하지 못합니다.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함은 물론이요, 하나님 나라를 이룸에도 어렵고 힘든 일에 스스로 앞장섭니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가득해 모든 말과 행함에서 그 사랑이 배어 나올 수밖에 없지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느 누가 하나님 일을 이룸에 있어서 자신의 성품이나 환경을 핑계 대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뜻만 생각하게 되고 어찌하든 그 뜻을 이뤄 드리고자 간절히 소망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향한 엘리야의 사랑과 행함을 통해 진실한 사랑 앞에서는 자신의 성품이나 환경을 핑계 댈 수 없음을 깨우쳐야 하겠습니다. 더구나 오늘날은 엘리야 시대와 달리 성령 시대이므로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마음 안에 계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엘리야의 지극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선을 본받아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더욱 뜨겁게 사랑하며 주의 일에 힘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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