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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누가복음 2:14) ...
       
 
  
 

'선' 시리즈 16 - 엘리야의 선(善)_3


2040
2022년 8월 28일 일요일


"나의 말한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한복음 3:28~30)


말라기 4장 5~6절에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말씀한 대로, 엘리야는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가 되어 많은 사람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 주님을 영접하게 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는 자기 의가 없고, 겸비해 누구와도 부딪치지 않았습니다. 또한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오직 순종만 했지요. 북이스라엘 아합왕 시대에 홀로 이방 선지자 850명과 대결해 불의 응답을 끌어내려 하나님만이 참 신임을 나타내는 등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사명을 마친 후에는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사랑으로 두려움 없이 강하고 담대하게 자신의 사명을 감당한 엘리야는 승천한 후에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사모함이 더욱 승해졌지요. 무엇보다 성자 하나님의 사명에 대해 밝히 알게 되자 주님을 향한 사랑이 얼마나 불붙는 듯했던지 결국 다시 이 땅에 세례 요한으로 와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 순교하기까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곧 세례 요한의 어떠한 분야를 선으로 여기며 그토록 기뻐하신 것일까요?


1. 자신이 엘리야인 줄 몰랐던 세례 요한

제사장 사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나이가 많도록 자녀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가브리엘 천사장이 사가랴에게 나타나 장차 아이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지요.
누가복음 1장 13~17절에 기록된 대로 "…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했습니다.
그 후 엘리사벳이 수태해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누가복음 1장 80절에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들에 있으니라" 했습니다. 구약시대의 엘리야는 심약했지만, 연단을 받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고 산 채로 들림 받은 후 모든 것을 알게 되니 신약시대의 세례 요한으로 왔을 때는 두려움 없이 강하고 담대했던 것입니다. 바로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이 임해 있기 때문이었지요.
여기서 세례 요한이 '이스라엘에 나타나는 날까지 빈들에 있었다'는 것은 '세상과 구분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부모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에 어려서부터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도록 가르쳤다는 것이지요.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는 그의 부모가(눅 1:6) 가브리엘 천사가 일러 준 말씀을 명심하여 얼마나 잘 양육했겠습니까? 또한 세례 요한은 세상과 구분된 삶을 살면서 늘 하나님과 영적인 교통을 이루었고 세상에 드러날 때를 정확하게 주관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세례 요한은 자신이 엘리야인 줄을 알고 있었을까요? 요한복음 1장 21절에 유대인들이 "네가 엘리야냐?"라고 물었을 때 "나는 아니라."고 답한 것으로 보아 세례 요한은 자신이 엘리야인 줄 몰랐습니다. 그가 엘리야의 마음이 담긴 영은 받았지만, 부모의 기로 인해 가려졌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잉태되신 분이니 영 자체가 마음이요, 부모의 기를 전혀 받지 않으셨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 땅에 왔는지 잘 아셨지요(눅 2장).
이처럼 세례 요한은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그의 영 안에 엘리야의 마음이 담겨 있었기에 어렴풋이 자신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마음의 주관을 받았습니다. 스스로 세상과 구분되어 절제된 삶을 살며 늘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자신의 사명에 대해 깨달아갔지요. 즉 '자신이 오실 이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과 무엇을 외쳐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하나하나 주관 받으며 세상에 드러날 때까지 기다린 것입니다.
마침내 세례 요한이 세상에 드러났을 때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마태복음 3장 4절에 보면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했습니다.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얼마나 세상과 구분되고 절제된 생활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왜 왔는지 알았으므로 완전히 구분된 삶을 살았던 것이지요.


2. 자기 본분을 변함없이 지키는 마음

세례 요한은 자신의 때가 되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사람들이 다 그에게 나아와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지요(마 3:5~6).
말라기 선지자 이후 하나님의 계시가 끊긴지 400여 년 만에 이스라엘에 나타난 세례 요한의 외침에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많은 사람이 그에게 나아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혹 그가 바라고 기다렸던 그리스도이신가 심중에 의논하게 됩니다(눅 3:15).
이때 세례 요한은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라고 말하지요(눅 3:16). 세례 요한은 자신의 본분이 주의 길을 예비하는 일임을 분명히 알았기에 그 이상의 선을 넘지 않고 잘 지켰습니다.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신다."고 전파하니 사람들은 장차 오실 분에 대해 사모함이 더했지요. 세례 요한도 하나님의 큰 선지자인데 그러한 세례 요한이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며 자신을 철저히 낮추니 백성들은 '과연 그분은 어떤 분일까?' 심히 기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례 요한이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가 되고,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되자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주며 사역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자 세례 요한을 따르던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로 향하게 되었지요.
이때 요한의 제자들이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합니다(요 3:26). 이 말을 들은 세례 요한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이제 내 시대는 끝났구나!' 하며 슬퍼했을까요? 아닙니다.
세례 요한은 오히려 제자들에게 "나의 말한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니라 …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했지요(요 3:28~30). 제자들을 타이르며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신의 본분을 되새겼고 주님의 나타나심을 진실로 기뻐했습니다.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모습에서 주님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지요. 주님에 대한 세례 요한의 마음은 순교하기까지 변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세례 요한이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의 본분을 변함없이 지킨 점을 기뻐하시며 선으로 여기신 것입니다.


3. 겸비하게 자신을 낮추며 오직 주의 영광을 구하는 마음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심히 가까운 마지막 때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오신 분임을 믿도록 그 길을 예비한 것처럼 오늘날은 더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 있도록 주의 길을 예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직분자들은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하는 것이 바로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설령 직분이 없어도 성도로서 전도의 사명이 있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니 주 안에서 어떠한 사명을 맡았다 해도 변함없이 자기의 본분을 충성되게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처럼 하나님 앞에 소중한 그릇이 되려면 사심 없이 겸비하게 자신을 낮추며 주님만 높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릴 때 자신도 영광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의 영광만을 위해 진실한 마음으로 행해야 하지요. 또 주의 일을 이루는 동역자들이 나보다 더 크게 영광 돌릴 수 있다면 중심에서 기쁨과 감사함으로 자신의 기득권도 내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 일을 할 것인가?' 보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더 드러낼까?'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것이 '나는 없고 오직 주의 영광만 구하는 사람'의 큰마음이지요. 각 분야에서 일꾼이 세워질 때도 자신이 '어떤 사명을 받게 될까?'에 연연하기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나보다 나은 사람이 머리로 세워지길 바라야 합니다.
이것은 주의 일에 대한 열심이 없거나 식어서 뒤로 물러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설령 나보다 못 한 사람이 머리로 세워졌다 해도 그가 충만하게 잘할 수 있도록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도울 수 있는 마음이 선이지요.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이 사랑받고 칭찬받아도 시기하지 않고 불편해하지 않으며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녕 재림의 주님을 사모하며 기다린다면 엘리야처럼 자기를 온전히 비우고 모든 사람과 화평해야 합니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자기 본분을 변함없이 지켜야 하지요. 그리하여 다시 오실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영광스럽게 주님을 맞으며 그 품에 안길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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