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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ë…„ 7ì›” 1ì¼ í™”ìš”ì¼ ì˜¤í›„ 7:27
 
 

ì„±íƒ„ì ˆì˜ ì°¸ëœ ì˜ë¯¸ë¥¼ 정확히 아십니까?
Ãֽо÷µ¥ÀÌÆ®
"지극히 ë†’ì€ ê³³ì—서는 하나님께 ì˜ê´‘ì´ìš” ë•…ì—서는 기ë»í•˜ì‹¬ì„ ìž…ì€ ì‚¬ëžŒë“¤ ì¤‘ì— í‰í™”로다 하니ë¼"
(ëˆ„ê°€ë³µìŒ 2:14) ...
       
 
  
 

'í•˜ë‚˜ë‹˜ì€ ì‚¬ëž‘ì´ì‹œë¼' 시리즈 4 - ì¼í” ë²ˆì— ì¼ê³± 번까지ë¼ë„


1930
2023ë…„ 2ì›” 19ì¼ ì¼ìš”ì¼


"ê·¸ë•Œì— ë² ë“œë¡œê°€ 나아와 ê°€ë¡œë˜ ì£¼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ì´ë‚˜ 용서하여 주리ì´ê¹Œ ì¼ê³± 번까지 하오리ì´ê¹Œ …
ì¼ê³± ë²ˆë¿ ì•„ë‹ˆë¼ ì¼í” 번씩 ì¼ê³± 번ì´ë¼ë„ 할지니ë¼"(ë§ˆíƒœë³µìŒ 18:21~22)


ì„¸ìƒ ì‚¬ëžŒë“¤ì€ ëŒ€ë¶€ë¶„ì˜ ê²½ìš°, ìžì‹ ì—게 해를 가한 ìƒëŒ€ì˜ ìž˜ëª»ì„ ìš©ì„œí•´ 주면서 "한 번만 ë” ìž˜ëª»í•˜ë©´ 그때는 가만ë‘ì§€ 않겠어!"ë¼ê³  ë§í•©ë‹ˆë‹¤.
ì´ì²˜ëŸ¼ 보통 ì‚¬ëžŒë“¤ì´ ë² í‘¸ëŠ” 관용ì´ëž€ ê·¸ 한계가 있어서 ìƒëŒ€ì˜ ìž˜ëª»ì„ í•œ 번, ë‘ ë²ˆ, í˜¹ì€ ì„¸ 번 í—ˆìš©í•˜ê¸°ë„ í•˜ì§€ë§Œ ê·¸ ì´ìƒì€ 용납하지 못하는 ê²ƒì„ ë³¼ 수 있습니다.
하지만 í•˜ë‚˜ë‹˜ì˜ ì‚¬ëž‘ì´ ë‚´ ì•ˆì— ê°€ë“하다면 아무리 악한 사람ì´ë¼ë„ 선으로 ì´í•´í•  수 있고 사랑으로 í¬ìš©í•  수 있습니다. 죄ì¸ì„ ìš©ì„œí•˜ì‹œë˜ ë까지 용서하시는 í•˜ë‚˜ë‹˜ì˜ ë¬´í•œí•œ ì‚¬ëž‘ì— ëŒ€í•´ 살펴보겠습니다.


1. ë없는 용서와 ì‚¬ëž‘ì˜ í•˜ë‚˜ë‹˜

ì˜ˆìˆ˜ë‹˜ì˜ ìˆ˜ì œìž ë² ë“œë¡œê°€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ì´ë‚˜ 용서하여 주리ì´ê¹Œ ì¼ê³± 번까지 하오리ì´ê¹Œ?" 하고 여쭙니다. 베드로는 ì¼ê³± ë²ˆì˜ ìš©ì„œë¼ë©´ 굉장한 ê´€ìš©ì„ ë² í‘¸ëŠ” 것으로 ìƒê°í–ˆë˜ 것입니다. ê·¸ëŸ°ë° ì˜ˆìˆ˜ë‹˜ì˜ ëŒ€ë‹µì€ "ì¼ê³± ë²ˆë¿ ì•„ë‹ˆë¼ ì¼í” 번씩 ì¼ê³± 번ì´ë¼ë„ 할지니ë¼"는 것ì´ì—ˆìŠµë‹ˆë‹¤.
ì´ëŠ” ì¼í” 번씩 ì¼ê³± 번, 즉 490번만 용서해 주ë¼ëŠ” ëœ»ì´ ì•„ë‹™ë‹ˆë‹¤. 7ì€ ì™„ì „ìˆ˜ì´ë¯€ë¡œ ì¼í” 번씩 ì¼ê³± ë²ˆì˜ ìš©ì„œëž€ 완전한 용서, ê³§ ë¬´í•œëŒ€ì˜ ìš©ì„œë¥¼ ì˜ë¯¸í•˜ëŠ” 것입니다. 완전한 용서 안ì—는 ì •ë…• ìžì‹ ì—게 유ìµì´ ë˜ì§€ 않는다고 í• ì§€ë¼ë„, ë” ë‚˜ì•„ê°€ ìžì‹ ì—게 í•´ê°€ ë ì§€ë¼ë„ 모든 ê²ƒì„ ìš©ì„œí•´ 준다는 ì˜ë¯¸ê°€ 담겨 있습니다.
ë§Œì¼ í•˜ë‚˜ë‹˜ê»˜ì„œ 우리 죄를 490번만 용서해 주셨다면 구ì›ë°›ì„ ì‚¬ëžŒì´ ê³¼ì—° 몇 명ì´ë‚˜ ë ê¹Œìš”? 세ìƒì—서 '법 ì—†ì´ë„ 산다'는 ë§ì„ 듣는 사람ì¼ì§€ë¼ë„ ë§‰ìƒ ì˜ˆìˆ˜ 그리스ë„를 ì˜ì ‘í•´ 하나님 ë§ì”€ì— 비추어 ë³´ë©´ 너무나 ë¹„ì§„ë¦¬íˆ¬ì„±ì¸ ê²ƒì„ ë°œê²¬í•˜ê²Œ ë©ë‹ˆë‹¤. 하나님께서는 ëˆˆì— ë³´ì´ëŠ” ì•…ë¿ë§Œ ì•„ë‹ˆë¼ ì•…ë“¤ì´ ë§ˆìŒì†ì— 있는 ìžì²´ë¥¼ 악하다고 ë§ì”€í•˜ì‹œê¸° 때문입니다(마 5:28 ; ìš”ì¼ 3:15).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며 무한한 사랑으로 모든 죄를 용서해 ì£¼ì‹œê¸°ì— ìš°ë¦¬ê°€ 구ì›ë°›ì•„ ì²œêµ­ì— ë“¤ì–´ê°ˆ 수 있는 것입니다. ë¹„ë¡ ìš°ë¦¬ê°€ 죄를 지었ì„ì§€ë¼ë„ 하나님 ì•žì— ìžë³µí•˜ê³  ë¹›ì´ì‹  í•˜ë‚˜ë‹˜ì˜ ë§ì”€ëŒ€ë¡œ 행해 나간다면 ì˜ˆìˆ˜ë‹˜ì˜ í”¼ê°€ 우리를 모든 불ì˜ì—서 깨ë—하게 하시지요(ìš”ì¼ 1:7). ì´ì²˜ëŸ¼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며 용서와 ì‚¬ëž‘ì„ ë² í‘¸ì‹œëŠ” 분입니다.


2. íšŒê°œì˜ ê¸°íšŒë¥¼ 주기 ì›í•˜ì‹œëŠ” 하나님

창세기 18~19ìž¥ì„ ë³´ë©´ 당시 소ë”ê³¼ 고모ë¼ëŠ” ì£„ì•…ì´ ì‹¬ížˆ 중하여 심íŒë°›ì„ ìˆ˜ë°–ì— ì—†ëŠ” ìƒí™©ì´ì—ˆìŠµë‹ˆë‹¤.
하나님께서는 ê·¸ë“¤ì„ ê·¸ëƒ¥ 멸하지 않으시고, ê·¸ëž˜ë„ ì‚´ë ¤ 줄 수 있는 조그마한 근거ë¼ë„ ì—†ì„까 하여 ì§ì ‘ 사ìž(使者)ë“¤ì„ ê·¸ê³³ì— ë³´ë‚´ì–´ 살피게 하십니다. 그리고 아브ë¼í•¨ì—ê²Œë„ ì´ ì¼ì„ 미리 알려 주시지요.
í•˜ë‚˜ë‹˜ì˜ ë§ˆìŒì„ ëˆ„êµ¬ë³´ë‹¤ë„ ìž˜ ì•Œì•˜ë˜ ì•„ë¸Œë¼í•¨ì€ 소ë”ê³¼ 고모ë¼ë¥¼ 구해 ë³´ê³ ìž ì—¬ëŸ¬ 차례 간청합니다. ê²°êµ­ ì˜ì¸ 오십 명ì—서 시작해 ì—´ 명만 ìžˆì–´ë„ ë©¸ë§ì‹œí‚¤ì§€ 않으시겠다는 í™•ë‹µì„ ë°›ìŠµë‹ˆë‹¤. 그러나 안타ê¹ê²Œë„ ì˜ì¸ ì—´ ëª…ì´ ì—†ì–´ì„œ 소ë”ê³¼ 고모ë¼ëŠ” 멸ë§í•˜ê³  ë§ì§€ìš”.
예레미야 18장 7~8ì ˆì— "ë‚´ê°€ 언제든지 ì–´ëŠ ë¯¼ì¡±ì´ë‚˜ 국가를 뽑거나 파하거나 ë©¸í•˜ë¦¬ë¼ í•œë‹¤ê³  í•˜ìž ë§Œì¼ ë‚˜ì˜ ë§í•œ ê·¸ ë¯¼ì¡±ì´ ê·¸ ì•…ì—서 ëŒì´í‚¤ë©´ ë‚´ê°€ ê·¸ì—게 내리기로 ìƒê°í•˜ì˜€ë˜ ìž¬ì•™ì— ëŒ€í•˜ì—¬ ëœ»ì„ ëŒì´í‚¤ê² ê³ "ë¼ê³  ë§ì”€í–ˆìŠµë‹ˆë‹¤. ë§Œì¼ ì†Œë”ê³¼ ê³ ëª¨ë¼ ì‚¬ëžŒë“¤ì´ ê·¸ ì•…ì—서 ëŒì´ì¼°ë‹¤ë©´ 하나님께서는 ê·¸ë“¤ì„ ë©¸í•˜ë¦¬ë¼ëŠ” ëœ»ì„ ëŒì´í‚¤ì…¨ì„ 것입니다. 하지만 ê·¸ë“¤ì€ ìš©ì„œì— ìš©ì„œë¥¼ 거듭한다고 í•´ë„ ì†Œìš©ì—†ëŠ” ì•…ì˜ í•œê³„ì ì— ë‹¬í–ˆê¸°ì— í•˜ë‚˜ë‹˜ê»˜ì„œëŠ” ê·¸ë“¤ì„ ë©¸í•˜ì‹¤ ìˆ˜ë°–ì— ì—†ì—ˆìŠµë‹ˆë‹¤.
그러면 니ëŠì›¨ëŠ” 어떠했습니까? ì´ê³³ 역시 ì•…ì´ ê·¹ì— ë‹¬í•´ 하나님 ì•žì— ìƒë‹¬ë  ì •ë„였지요. 하나님께서는 ê·¸ë“¤ì„ ë°”ë¡œ 멸하시지 않고 요나 ì„ ì§€ìžë¥¼ ë³´ë‚´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요나가 "사십 ì¼ì´ 지나면 니ëŠì›¨ê°€ 무너지리ë¼" 하고 ì„ í¬í•˜ìž 왕과 온 백성, ì§ìŠ¹ë“¤ê¹Œì§€ 금ì‹í•˜ë©° 회개하였지요. 하나님께서는 ì´ë“¤ì„ 용서해 주시며, ê·¸ ëœ»ì„ ëŒì´ì¼œ ìž¬ì•™ì„ ë‚´ë¦¬ì§€ 않으셨습니다.
ì—스겔 33장 14~15ì ˆì— "가령 ë‚´ê°€ ì•…ì¸ì—게 ë§í•˜ê¸°ë¥¼ 너는 ì£½ìœ¼ë¦¬ë¼ í•˜ì˜€ë‹¤ í•˜ìž ê·¸ê°€ ëŒì´ì¼œ ìžê¸°ì˜ 죄ì—서 떠나서 법과 ì˜ëŒ€ë¡œ 행하여 ì „ë‹¹ë¬¼ì„ ë„로 주며 ì–µíƒˆë¬¼ì„ ëŒë ¤ë³´ë‚´ê³  ìƒëª…ì˜ ìœ¨ë¡€ë¥¼ 준행하여 다시는 ì£„ì•…ì„ ì§“ì§€ 아니하면 그가 ì •ë…• ì‚´ê³  죽지 않ì„ì§€ë¼" 했지요. ì´ì²˜ëŸ¼ 하나님께서는 ë¹„ë¡ ì•…ì¸ì´ë¼ê³  í•´ë„ íšŒê°œí•  기회를 주어 회개하면 용서해 주시고(왕하 20장, 대하 33장), 온전히 죄ì—서 ëŒì´í‚¤ë©´ ë™ì´ 서ì—서 먼 ê²ƒê°™ì´ ê·¸ 죄과를 ê¸°ì–µí•˜ì§€ë„ ì•Šìœ¼ì‹­ë‹ˆë‹¤(시 103:12).


3. ì‹­ìžê°€ì˜ 사랑으로 용서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í”¼ì¡°ë¬¼ì¸ ì‚¬ëžŒë“¤ì´ ì˜ˆìˆ˜ë‹˜ì„ í•박하고 조롱하며 죽ì´ê³ ìž ì‹­ìžê°€ì— 못 박기까지 í–ˆì„ì§€ë¼ë„ "아버지여 ì €í¬ë¥¼ 사하여 주옵소서 ìžê¸°ì˜ 하는 ê²ƒì„ ì•Œì§€ 못함ì´ë‹ˆì´ë‹¤" 하며 ì‚¬ëž‘ì˜ ì¤‘ë³´ê¸°ë„를 올리셨습니다(눅 23:34).
여기서 'ì €í¬'란 당시 ì˜ˆìˆ˜ë‹˜ì„ í•박하고 ì‹­ìžê°€ì— 못 박으며 í¬ë¡±í•˜ë˜ ì‚¬ëžŒë“¤ë§Œì„ ê°€ë¦¬í‚¤ëŠ” ê²ƒì´ ì•„ë‹™ë‹ˆë‹¤. 예수님께서 구ì›ì˜ 섭리를 완성하신 후ì—ë„ ì˜ˆìˆ˜ 그리스ë„를 구세주로 ì˜ì ‘하지 아니하고 ì–´ë‘  ê°€ìš´ë° í–‰í•  온 ì¸ë¥˜ë¥¼ 지칭하지요. ì–´ë‘ ì— ì†í•œ ì‚¬ëžŒë“¤ì€ ë¹›ê³¼ 진리를 ì‹«ì–´í•˜ê¸°ì— ìš°ë¦¬ì˜ ì£„ë¥¼ 대ì†í•´ 주시기 위해 ì´ ë•…ì— ì˜¤ì‹  ì˜ˆìˆ˜ë‹˜ì„ ì•Œì•„ë³´ì§€ 못했고 ë¹› ë˜ì‹  ì˜ˆìˆ˜ë‹˜ì„ ì‹­ìžê°€ì—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ê·¸ë“¤ì´ ì§„ë¦¬ë¥¼ 알지 못해 죄를 범했으니 용서해 달ë¼ê³  하나님께 ì‚¬ëž‘ì˜ ê°„êµ¬ë¥¼ 대신 올리신 것입니다.
ì´ì™€ ê°™ì€ ìš©ì„œì™€ ì‚¬ëž‘ì„ ë² í‘¸ì‹  예수 그리스ë„를 우리가 믿는다고 ë§í•˜ê¸°ëŠ” 쉽지만, 실제로 ìžì‹ ì„ í•박하는 ì‚¬ëžŒë“¤ì„ ìœ„í•´ 기ë„í•´ 주며 ì›ìˆ˜ê¹Œì§€ 사랑하는 ì‚¬ëžŒì€ ê·¹ížˆ 드문 ê²ƒì„ ë³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ë°ë°˜ 집사는 아무 죄 ì—†ì´ ëŒì— ë§žì•„ 죽어가면서 "주여 ì´ ì£„ë¥¼ 저들ì—게 ëŒë¦¬ì§€ 마옵소서" 하고 ìžì‹ ì„ ëŒë¡œ 치는 ì‚¬ëžŒë“¤ì„ ìœ„í•´ ê¸íœ¼ì„ 구하는 기ë„를 했지요(í–‰ 7:60).
우리가 예수 그리스ë„를 ì˜ì ‘하고 성령 ë°›ì€ í›„, ë¹› ê°€ìš´ë° í–‰í•˜ë ¤ê³  하면 ì›ìˆ˜ 마귀 ì‚¬ë‹¨ì€ ì•…í•œ ìžë“¤ì„ 사주해 방해하며 í•박합니다. ë˜ ì „ë„하다 ë³´ë©´ 조롱하며 í›¼ë°©ì„ ë†“ëŠ” ì‚¬ëžŒë“¤ì„ ë§Œë‚  ë•Œë„ ìžˆì§€ìš”. ì´ë•Œ 예수님ì´ë‚˜ 스ë°ë°˜ 집사처럼 ê·¸ë“¤ì„ ë¶ˆìŒížˆ 여기고 대신 용서를 구하는 ì‚¬ëž‘ì˜ ê°„êµ¬ë¥¼ í•  수 있어야 합니다. ì£¼ë‹˜ì˜ ë§ˆìŒì„ 닮으면 설령 ìžì‹ ì„ 괴롭히고 í•박하는 사람ì´ë¼ í•´ë„ ë¯¸ì›Œí•˜ê±°ë‚˜ 외면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중심ì—서 우러나오는 ì‚¬ëž‘ì˜ ê¸°ë„를 í•´ 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í•  ê²ƒì€ ì¼í” ë²ˆì— ì¼ê³± 번ì´ë¼ë„ 용서하시는 ì‚¬ëž‘ì˜ í•˜ë‚˜ë‹˜ì¼ì§€ë¼ë„ 용서하실 수 ì—†ê¸°ì— ìš°ë¦¬ê°€ 대신 용서를 구하는 기ë„를 í•´ 줄 수 없는 예외ì ì¸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ê³§ 하나님께 ìš©ì„œë°›ì„ ìˆ˜ 있는 죄가 있지만 용서받지 못하는 ì£„ë„ ìžˆë‹¤ëŠ” 사실입니다.
요한ì¼ì„œ 5장 16ì ˆì— ì‚¬ë§ì— ì´ë¥´ëŠ” 죄, ê³§ ìš©ì„œë°›ì„ ìˆ˜ 없는 죄는 구하지 ë§ë¼ 했습니다(마 12:31~32 ; 눅 12:10). ì„±ë ¹ì— ì°¸ì˜ˆí•œ 후 타ë½í•˜ì—¬ 현저히 ì£¼ë‹˜ì„ ì‹­ìžê°€ì— 못 박는 ê²½ìš°ë„ ìš©ì„œë°›ì„ ìˆ˜ 없다고 했지요(히 6:4~6). ë¿ë§Œ ì•„ë‹ˆë¼ ì§„ë¦¬ë¥¼ 아는 ì§€ì‹ì„ ë°›ì€ í›„ ì§ì§“ 죄를 짓는 ê²½ìš°ë„ ìš©ì„œë°›ì„ ìˆ˜ 없습니다(히 10:26~27).
ì´ì²˜ëŸ¼ 예외ì ì¸ ê²½ìš°ë„ ìžˆë‹¤ëŠ” ê²ƒì„ ì•Œë˜ ìš°ë¦¬ì˜ ë§ˆìŒë§Œí¼ì€ 어떠한 사람ì´ë¼ë„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죄ì¸ë“¤ì„ 위해 ë…ìƒìž ì˜ˆìˆ˜ë‹˜ì„ ì´ ë•…ì— ë³´ë‚´ 주신 í•˜ë‚˜ë‹˜ì˜ ìš©ì„œì™€ ì‚¬ëž‘ì„ ê¹¨ë‹¬ì•„ í•˜ë‚˜ë‹˜ì˜ ìžë…€ ëœ ìš°ë¦¬ë„ ê·¸ 사랑 ì•ˆì— ê±°í•´ì•¼ 하지요.
ë˜í•œ ìžì‹ ì„ 죽ì´ëŠ” ì‚¬ëžŒë“¤ì˜ ì£„ê¹Œì§€ë„ ëŒ€ì‹  용서를 êµ¬í•˜ì…¨ë˜ ì˜ˆìˆ˜ë‹˜ì˜ ì‚¬ëž‘ì„ í•­ìƒ ë§ˆìŒì— 새겨야 í•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같ì´, 주님께서 ì˜í˜¼ë“¤ì„ 사랑하신 ê²ƒê°™ì´ ìš°ë¦¬ë„ ëª¨ë“  ì‚¬ëžŒì„ í–¥í•´ 참다운 용서와 ì‚¬ëž‘ì˜ ë§ˆìŒì„ 가져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ì„±ë„ ì—¬ëŸ¬ë¶„,
시편 130편 3ì ˆì— "여호와여 주께서 ì£„ì•…ì„ ê°ì°°í•˜ì‹¤ì§„대 주여 누가 서리ì´ê¹Œ" 했습니다. ë§Œì¼ í•˜ë‚˜ë‹˜ê»˜ì„œ ìžë¹„를 베풀지 않으시고 ê³µì˜ëŒ€ë¡œë§Œ íŒê²°í•˜ì‹ ë‹¤ë©´ 하나님 ì•žì— ì„¤ ì‚¬ëžŒì€ ì•„ë¬´ë„ ì—†ìŠµë‹ˆë‹¤. 그러나 ë„저히 용서할 수 없는 ì‚¬ëžŒë„ í•˜ë‚˜ë‹˜ê»˜ì„œëŠ” 용서해 주셨지요.
ì´ëŸ¬í•œ í•˜ë‚˜ë‹˜ì˜ ì‚¬ëž‘ê³¼ 용서를 ë°›ì€ ì„±ë„들ì´ë¼ë©´ 아무리 내게 해를 가한 사람ì´ë¼ë„ 중심ì—서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기를 ì£¼ë‹˜ì˜ ì´ë¦„으로 ì¶•ì›í•©ë‹ˆ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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