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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18일 일요일 오후 10:5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_ '팔복' 시리즈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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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화목하고 평온한 것을 화평이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화평함은 어떤 의미일까요? ...
       
 
  
 

사랑의 열매_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시리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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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5일 일요일


당회장 이재록 목사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 갈라디아서 5:22~23 -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마태복음 5장의 팔복, 고린도전서 13장의 영적인 사랑과 더불어 신앙생활의 척도가 되는 말씀입니다.
주 안에서 자신이 얼마나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진리의 마음으로 변화됐는지, 어느 정도의 믿음의 분량에 이르렀는지, 얼마나 주님의 마음을 닮았는지 쉽게 점검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 첫 번째 열매인 '사랑'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사랑의 열매는 '최고의 영적인 사랑'

일반적으로 사랑은 육적인 사랑과 영적인 사랑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육적인 사랑이란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사랑이며, 언젠가는 변질되는 헛된 사랑입니다. 반면에 영적인 사랑은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는 사랑이지요.
그렇다면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영적인 사랑과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 사랑의 열매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사랑의 열매는 자신의 생명까지 줄 수 있는 희생이 포함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의 영적인 사랑보다 차원 높은 최고의 영적인 사랑이지요. 우리가 사랑의 열매를 맺어 생명을 주기까지 상대를 위해 희생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원수를 위해서도 생명을 주는 최고의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에게 주신 사랑은 영적인 사랑이었습니다. 그를 위해 풍요로운 에덴동산을 창설하여 최상의 환경뿐 아니라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권세까지 주셨습니다. 그러나 정작 아담은 미움이나 변질되는 육적인 사랑을 체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 사랑을 받아도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지 몰랐지요. 결국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간교한 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는 불순종의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창 2:17, 3:1~6).
마침내 아담의 마음에 죄가 들어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는 육의 사람이 되고 말았지요. 더는 풍요로운 에덴동산에 살 수 없어 이 땅으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서 경작받는 동안(창 3:23) 범죄한 아담의 후손인 모든 사람은 미움, 시기, 슬픔, 사망 등 사랑과 반대되는 것을 체험하면서 점점 더 영적인 사랑에서 멀어져갔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은 사랑의 열매는 물론, 영적인 사랑조차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사랑의 표현이 넘쳐난다 해도 육적인 사랑은 세월이 흐르고 상황과 조건이 달라지면 자신의 유익에 따라 쉽게 변합니다. 자신이 받은바 은혜를 잊어버리고 불평, 불만하기도 하며 심지어 배신하기도 합니다. 먼저 받아야 주고 자신에게 유익이 되어야 베풀기도 하지요. 내가 준 만큼 받기 원하는 것, 상대가 주지 않으면 서운해하고 아쉬워하는 것도 육적인 사랑에 속합니다.


2.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주는 사랑

사람의 사랑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대신해 자기 목숨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죄인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도 아낌없이 내어 주실 만큼 영적인 사랑이 많으신 분입니다(롬 5:8).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해 그의 후손인 모든 사람이 영원한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그 죗값을 대신 담당케 하셨습니다(롬 6:23 ; 갈 3:13 ; 히 9:22). 예수님께서 율법의 저주 아래 놓인 죄인들을 대신하여 나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심으로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생에 이르게 된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세상 사람들이 핍박하고 모욕할 줄도, 결국에는 십자가에 못 박을 줄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죄인들을 구원하시고자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써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신 것입니다(요일 4:9~10).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께서도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처참한 십자가에 못 박혀 생명을 주는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통해 나타내신 하나님의 사랑은 마지막 물과 피 한 방울까지도 아끼지 않고 생명을 다한 사랑, 영원히 변함없는 최고의 사랑입니다.


3.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

요한일서 4장 7~8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이 깨닫는다면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연단을 받을 때에도, 자신의 모든 소유와 소중한 것을 다 잃어버릴 지경에 처할 때에도 마음에 전혀 요동함이 없습니다.
교회 개척 초기, 저는 세 딸을 동시에 잃을 뻔한 일이 있었습니다. 금요철야예배를 드리고 있을 때 교회 지하 사택에 잠들어 있던 어린 딸들이 한 청년과 함께 연탄가스에 중독된 것입니다. 밤새 연탄가스를 마셨기 때문에 살아날 가망이 없어 보였지만 저는 하나님 앞에 어떤 원망도, 서운함도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눈물, 고통, 사망이 없는 아름다운 천국에서 평안히 살 것을 생각하니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청년은 양 떼였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도록 그 영혼만은 살려 주시라고 기도했지요. 먼저 청년에게 손을 얹고 기도한 뒤 막내딸에게 기도하는 중에 청년의 의식이 돌아왔고 둘째에게 기도하니 막내딸이 일어나 앉는 것입니다. 이어서 둘째 딸이 일어나고 마지막으로 첫째 딸이 정신을 차렸지요. 이후 아무런 후유증 없이 모두 지금까지 건강하며, 세 딸은 목회자로서의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어떤 상황에 처한다 해도 그 사랑에 변함이 없습니다. 끝까지 생명 다해 충성하며 온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할 뿐입니다. 영혼들을 대할 때에도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이 전혀 없으므로 모든 것을 내어 주면서도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순수하게 자기를 희생하며 상대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 줄 수 있습니다(요일 3:16).
저는 교회 개척 이후 지금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오면서 참으로 수많은 연단을 받았습니다. 제게 은혜를 입은 사람, 내 가족과 같이 대해 준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기도 했고, 세상 사람들의 오해를 받아 아무 잘못도 없이 손가락질을 당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들을 선으로 대하며 하나님께 맡기고 사랑과 긍휼로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했지요. 교회를 어렵게 만들고 떠난 사람들이라 해도 어찌하든 회개하고 돌아오기만을 기도했습니다. 극심한 연단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었기에 저 역시 그러한 사랑으로 영혼들을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4. 사랑의 열매를 맺으려면

우리 마음에 있는 죄악과 불법을 버림으로 성결을 이룬 만큼 사랑의 열매를 온전히 맺을 수 있습니다. 악이 없는 마음에서 참된 사랑이 나오므로 상대를 결코 힘들게 하거나 부담을 주지 않으며 항상 평안함을 줍니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섬기기에 기쁨을 주고 영혼이 잘되게 하며 하나님 나라를 더 크게 이룰 수 있지요.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자기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진다 해도 그들을 멸망에서 건지기 원했습니다(출 32:32).
이방인 선교에 앞장섰던 사도 바울 역시 생명의 위협과 유대인들의 훼방과 핍박이 끊임없이 따랐지만 교회와 성도들을 염려할 뿐(고후 11:23~29)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았으며(롬 9:3), 순교로써 가장 큰 사랑을 확증해 보였습니다(요 15:13).
어떤 사람들은 주님을 사랑한다 하면서도 믿음의 형제들과 작은 일에도 부딪치고 서로 불편해하며, 함께 하나님 일을 하다가도 마음이 좀 맞지 않으면 감정을 품기도 합니다. 또 영적으로 시들어가고 죽어 가는 영혼들을 보면서도 무감각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만일 천 명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면 제가 대신 지옥에 가야 한다 해도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지옥이 어떤 곳인지 너무나 잘 알기에 어떤 대가를 치른다 해도 지옥에 갈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옥에 떨어질 영혼들을 대신할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는 것이지요.
이들은 제가 섬기는 교회에서 진리의 말씀을 듣고 권능의 역사를 보면서도 진리를 선택하지 못하고 사망으로 가는 일꾼이나 양 떼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저와 우리 교회를 오해하고 시기하여 핍박한 사람들일 수도 있고, 전쟁과 기근과 가난으로 절망 가운데 빠진 불쌍한 영혼들일 수도 있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저를 위해 죽어 주신 것처럼 저도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루하루 진액을 다하기까지 모든 삶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저를 사랑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가장 간절한 소원임을 알기 때문이지요. 또한 날마다 '어찌하면 더 많은 곳에 복음을 전할까? 어찌하면 더 큰 권능을 베풀어 더 많은 영혼이 믿을 수 있게 할까? 어찌하면 세상이 헛된 줄 알아서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하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독생자의 생명까지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 안에 가득하다면 하나님과 영혼들을 생명 다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랑의 열매를 맺어 사랑의 결정체인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 사랑 자체이신 아버지 하나님과 신랑 되신 주님과 영원히 사랑을 나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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