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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18일 일요일 오후 10:0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_ '팔복' 시리즈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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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화목하고 평온한 것을 화평이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화평함은 어떤 의미일까요? ...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_ '팔복' 시리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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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14일 일요일


당회장 이재록 목사


"…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 마태복음 5:3~10 -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많은 사람이 물질의 어려움으로 인해 슬픔 속에 사는가 하면, 질병의 고통 속에서 신음합니다. 혹은 어떤 일이 자신의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마음 아파하는가 하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하여 쓰라린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요.
그런데 슬픈 일을 당하여 마음 아파하는 애통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이러한 애통은 자신의 악함과 감정 속에서 나오는 육적인 애통이므로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수 없습니다. 반면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혹자는 시련과 고통을 당하는데 어떻게 기뻐할 수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구원받고 천국을 약속받았으니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또한 믿음으로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해 선을 이루어 주실 줄 믿기 때문이지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영적인 애통입니다. 마태복음 5장 4절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말씀한 대로 참된 복의 두 번째 관문은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한 영적인 애통입니다. 그러면 영적인 애통에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이 있을까요?


1. 참된 복의 두 번째 관문 : 애통하는 자

1) 죄에 대한 회개의 애통

예수님을 믿고 구세주로 영접하면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사실이 마음으로 깨우쳐지게 됩니다. 그 사랑을 느낄 때 눈물, 콧물을 흘리며 죄에 대해 통회자복 하는 회개의 애통이 나오지요.
회개란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 죄악 가운데 살았던 것을 철저하게 돌이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회개의 애통을 하면 죄의 짐이 벗겨지므로 마음에서 기쁨이 넘치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온전치 않으므로 다시 범죄하는 일들이 생기니 또 애통하는 일이 생깁니다. 이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 앞에 너무나 죄송하고 민망해 통회자복 하게 되지요. 이런 애통함이 있을 때 위로부터 죄를 버릴 수 있는 힘이 오는 것입니다.
간혹 성도들 중에는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고 그때마다 회개합니다. 변화가 더디거나 아예 변화되지 못하는 경우이지요. 이는 회개의 애통을 한다고 하지만 마음 중심에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바른 행함을 나타냄으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눅 3:8). 더 나아가 어느 정도 신앙이 성숙하고 교회 일꾼으로 성장하면 더 이상 회개의 애통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죄악을 버림으로 애통할 일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사명 감당을 하지 못했을 때에도 회개의 애통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담이 되어 지킴받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중심에서 회개하고 애통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강이 임하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임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애통하는 자에게 주시는 위로하심이지요.

2) 믿음의 형제를 위한 애통

간혹 믿음의 형제들 중에 죄를 범하여 사망의 길로 가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긍휼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일과 같이 애통함은 물론, 대신 회개하며 진리로 행할 수 있도록 사랑의 기도를 합니다. 이것은 진정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나오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애통의 기도를 기뻐 받으시고 하나님의 위로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그런데 상대를 위해 애통하고 기도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판단하고 정죄하며 찌르는 말로 고통을 주고 다른 사람에게 상대의 허물을 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으니 사랑으로 상대의 허물을 덮어주며 죄를 범하지 않도록 기도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을 보면 스데반 집사가 유대인들의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악한 사람들을 위해 사랑으로 기도합니다(행 7:59?60). 예수님께서는 온갖 조롱과 핍박을 다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을 위해 사랑의 중보기도를 올리시지요(눅 23:34). 이는 영혼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넓고 큰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영혼들을 위해 사랑으로 대신 회개하고 기도하는 마음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 마음이요, 축복받을 수 있는 마음입니다.

3) 영혼 구원을 위한 애통

하나님의 자녀들은 죄악으로 물든 세상과 멸망의 길로 가는 사람들을 보며 안타깝게 여기는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는 물로 심판을 받았던 노아 시대나, 불의 심판을 받은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죄악이 관영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아직 구원받지 못한 부모, 형제, 일가친척, 이웃 등을 위한 애통은 물론 나라와 민족, 교계, 하나님 나라를 훼방하는 일들에 대한 애통 등 영혼 구원을 위한 애통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늘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영혼들을 위해 염려하며 애통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면서 무수한 고난과 핍박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지만 오히려 하나님 앞에 찬미하며 기도했지요(행 16:25). 그러나 하나님 나라와 영혼들을 위해서는 심히 마음 아파하며 애통했습니다(행 20:31 ; 고후 11:28?29).
이처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애통하는 사람은 성도들이 하나님 말씀 가운데 굳게 서지 못할 때,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할 때 애통하고 염려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의 이름으로 핍박을 받을 때 힘들어서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영혼 구원을 위해 애통하고 기도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에 흑암이 짙어가는 것을 볼 때에 영적인 애통함으로, 이 땅에 더 크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무수한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2. 영적인 애통을 하려면 영적인 사랑이 있어야

요한복음 6장 63절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말씀한 대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랑만이 생명을 낳고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영적인 애통을 하려면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에 영적인 사랑이 임해야 합니다.
사랑은 육적인 사랑과 영적인 사랑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육적인 사랑이란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사랑이요, 결국 썩어지고 변질되는 헛된 사랑입니다. 반면에 영적인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는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의 사랑이요,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는 참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사랑은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진리 가운데 거할 때만이 베풀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까지 사랑하며 상대를 위해 생명이라도 내어 줄 수 있는 영적인 사랑을 소유한 사람에게 풍성한 축복으로 함께해 주십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생명을 낳으며 수많은 사람이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지요.
우리 안에 영적인 사랑의 마음이 있을 때 영혼들을 위해 대신 애통하며 기도할 수 있고, 아무리 강퍅한 심령이라도 깨어지고 변화되어 생명과 믿음을 낳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랑이 임하면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한 영적인 애통이 나오게 됩니다. 그럴 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말씀한 대로 영혼들이 변화되며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필요한 것들을 넘치게 채워 주십니다.


3. 영적으로 애통하는 사람에게 임하는 축복

마태복음 5장 4절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말씀한 대로 영적인 애통을 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는 세상 사람들이 주는 위로와는 다릅니다.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8) 말씀한 대로 말로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위로를 주시는 것입니다.
궁핍한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물질의 축복을 주시고,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에게는 치료해 강건함을 주시며,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응답으로 축복해 주십니다.
또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해 애통하는 사람에게는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영혼들을 위해 애통할 때는 전도의 열매, 부흥의 열매를 맺게 하시지요. 뿐만 아니라 죄를 버리기 위해 마음을 찢고 애통하는 사람에게는 죄 사함의 은혜를 주시며, 성결되어 가는 만큼 사도 바울과 같이 큰 권능도 나타낼 수 있게 축복하십니다.
이와 더불어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받는 축복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축복으로 갚아 주시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넘치게 채워 주실 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값진 상급으로 쌓아 주시니 참된 복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4절에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말씀한 대로 눈물, 슬픔, 고통이 없는 천국에서 말할 수 없는 영광과 상급으로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인 사랑을 소유하여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애통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세상 일로 육적인 애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결한 사람이 되기 위해, 믿음의 형제들과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해 영적으로 애통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은 물론, 천국에서도 귀한 상급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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