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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18일 일요일 오후 10:5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_ '팔복' 시리즈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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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화목하고 평온한 것을 화평이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화평함은 어떤 의미일까요? ...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_ '팔복' 시리즈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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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4일 일요일


당회장 이재록 목사

"…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 마태복음 5:3~10 -


소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은 죄인이라도 긍휼히 여기는 참된 사랑과 용서를 통해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도 긍휼의 마음으로 용서를 베풀 때 상대에게 감동을 줄 수 있고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러면 팔복 중에 하나인 긍휼(矜恤)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1. 참된 복의 다섯 번째 관문 : 긍휼히 여기는 자

긍휼은 누가 죄를 범하거나 직접적으로 자신을 힘들게 할지라도 중심에서 용서하며 오히려 그를 위해 기도해 주고 사랑으로 권면해 줄 수 있는 마음을 뜻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 양선의 마음과 비슷하지만, 이보다 더 깊은 차원이지요.
양선은 악이 전혀 없으며 오직 선(善)만을 추구하는 마음으로, 다투지도 들레지도 않으시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 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마 12:19~20).
상대가 악을 행했다 해서 즉시 징벌하는 것이 아니라 어찌하든 구원에 이르기까지 참아 주며, 아직 온전치 못해 죄를 범하는 사람이라 해도 어찌하든 성령으로 깨우치고 진리 가운데 변화되어 갈 수 있도록 끝까지 기다려 주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으로 설령 상대가 이유 없이 나에게 악을 행한다 해도 이해하고 용서하며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는 마음이 바로 긍휼입니다. 자기 입장에서 자기 유익을 좇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 입장에서 생각해야 이해할 수 있고 긍휼을 베풀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을 보면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신 예수님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험코자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끌고 와서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라고 묻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을까요? 조용히 몸을 굽히시고 손가락으로 바닥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하셨지요. 그곳에 있던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공통적인 죄목들을 하나하나 써내려 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내 몸을 일으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하나, 둘씩 그 자리를 떠나고 예수님과 여인만 남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간음한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며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 여인에게는 이후로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을 정도로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사건이 되었을 것입니다.


2. 긍휼히 여기는 마음의 다양한 형태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배고픔을 채워 줄 양식과 갈증을 해소시킬 음료일 것입니다. 이는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복음 6장 5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말씀하시며, 이에 앞서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인자 곧 예수님의 살이란 하나님 말씀을 뜻하며, 인자의 살을 먹는다는 것은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양식 삼는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읽고 배워 양식을 삼았으면 믿음으로 기도하며 말씀대로 행하는 것을 뜻합니다.
곧 우리 영혼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영적인 생명을 얻고 믿음이 자라나 영적으로 배부른 축복을 누리는 것이지요. 요한일서 2장을 보면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영적인 생명을 유지하며 믿음이 성장하는 과정을 알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갓 태어난 아이처럼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 죄 사함을 얻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됩니다.
이러한 젖먹이 때를 지나 아이의 때가 되면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지만 온전히 말씀을 지켜 행하지는 못하지요. 그러나 아이의 때를 지나면 말씀과 기도로 무장해 죄가 무엇이며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줄 아는 청년의 때가 됩니다.
영적인 청년의 때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강한 믿음이 있기에 이 세상의 헛된 것들을 취하지 않고 성령 충만해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말씀을 듣는 대로 죄악을 싸워 이기는 단계입니다. 시험 환난이 와도 굽힐 줄 모르는 담대함이 있으므로 하나님 말씀이 그 속에 거하며 원수 마귀 사단과 세상을 이기고 항상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아비가 되어야 비로소 근본 된 하나님을 알므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깊고 높은 차원의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아비의 신앙은 하나님의 근본과 천지 창조를 비롯한 무수한 영적인 세계의 비밀을 아는 단계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기에 그 마음에 맞춰 온전히 순종해 가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건강, 명예, 권세, 부, 자녀의 축복 등 모든 복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1) 한없는 용서의 긍휼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들은 이미 하나님의 크신 긍휼을 입은 것입니다. 죄로 인해 지옥에 떨어져서 세세토록 고통받아야 했으나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상에서 보혈을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값없이 용서받고 지옥에서 건짐 받는 구원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전 세계 수많은 영혼이 구원의 길로 나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심히 아프게 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진심으로 통회자복 하고 돌아오면 오히려 사랑으로 품어 주시며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기억지도 않으십니다(시 103:12 ; 사 1:18).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마 18:22). 7은 완전수로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 하셨으니 완전한 용서, 무한대의 용서를 베풀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죄로 인해 사망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값없이 죄 사함을 받았는데 상대의 작은 잘못 하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판단 정죄한다면 얼마나 악한 모습이겠습니까(마 18:23~35).
상대로 인해 혹 불이익을 당했다 해도 용서하고 이해하며 포용할 때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는 큰마음의 소유자가 되는 것입니다. 긍휼의 마음이 있다면 누구를 미워하거나 감정을 품지 않습니다. 설령 상대가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은 일을 행한다 할지라도 징계하기보다는 먼저 사랑으로 권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혹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잘못한 일이 있을지라도 아랫사람은 겸비함으로 순종하고 따라주며 사랑으로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벧전 2:18).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잘못한 일이 있을 때에도 윗사람은 무조건 책망하거나 화평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가르치고 진리로 바로 정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긍휼히 여기는 행함이지요.
우리는 어떠한 상황을 만난다 할지라도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며 긍휼 가운데 생명이라도 줄 수 있는 사랑의 마음으로 기도하며 권면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사랑이 담긴 징계의 긍휼

징계의 긍휼 역시 미움이나 정죄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근본은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징계도 따르는 것이요, 그렇게 해서라도 죄에서 돌이켜 진리대로 행할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이지요(히 12:6~8).
잠언 13장 24절에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말씀합니다. 그런데 같은 징계라 해도 사랑이 없다면 긍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징계는 미움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결코 상대를 변화시킬 수도 없지요. 비록 상대가 잘못을 범했다 해도 그 사람의 입장과 장래를 생각해 사랑으로 징계할 때라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징계의 긍휼에 속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믿음의 형제가 죄를 범했을 경우, 진리로 권고하고 징계하는 과정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마 18:15~17). 먼저는 당사자에게 사랑으로 권면해 돌이키게 해야 하고, 만일 권면을 듣지 않을 때는 그 사람이 속한 모임에서 질서상 윗분에게 말해 돌이키게 해야 합니다. 그래도 듣지 않는다면 교회에 알려서 치리함으로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지요. 마지막으로 교회의 말도 듣지 않는다면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같이 여기는 것이 성경상의 순서입니다.

3)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올바른 구제의 긍휼

하나님의 자녀라면 어려움 중에 있는 사람들을 돌볼 줄 아는 긍휼을 행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믿음의 형제가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말로만 안타까워하고 행함이 없다면 긍휼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구제의 긍휼은 형제가 어려울 때 내 것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약 2:15~16).
그런데 긍휼을 베풀고 구제할 때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범함으로 징계를 받아서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을 도와줘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스스로 어려움을 자초하는 일이지요. 또한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것은 아니라 해도 육체가 강건한 사람이 게을러서 일하지 않으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이런 사람을 도와주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충분히 일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이지요. 이런 사람을 돕는 것은 오히려 상대를 더욱 게으르고 무능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렵다고 무조건 구제하며 긍휼을 베풀 것이 아니라, 잘 분별함으로 구제하고도 어려움을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에게도 긍휼을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사람이라도 외면하거나 멸시해서는 안 되며, 상대를 나보다 낫게 여기고 따뜻한 사랑의 마음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하지요. 주위의 시선과 체면 때문에 마지못해 돕는 경우도 있는데,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진정 사랑의 마음으로 상대를 도와주는 것을 긍휼이라 하시며 이런 사람에게 축복을 주십니다.


3. 긍휼히 여기는 사람에게 임하는 복

마태복음 5장 7절에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한 대로 하나님께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설령 자신을 힘들게 하고 피해를 입힌 사람이라 해도 용서하고 긍휼히 여긴다면, 혹 자신이 어려움을 당하게 되거나 실수로라도 상대에게 피해를 입히게 될 때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 6:12)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9장에 나오는 '다비다'라는 여제자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많은 선과 구제를 베풀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수고하다가 병들어 죽었지만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베드로의 기도를 받게 함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긍휼로 생명을 연장받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긍휼히 여길 때 하나님께서 부요하고 강건한 축복을 더해 주십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시고,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 주시며, 연약함을 강건하게 바꾸어 주시지요.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을 때 임하는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하고 아름다운 긍휼의 향기로 많은 사람에게 위로와 생명을 주며, 하나님의 축복하심 가운데 풍성한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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