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민뉴스, 만민, 만민교회, 만민뉴스, 이재록, 재록, 닥터리
2020년 2월 26일 수요일 오후 12:2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시리즈 11 -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
최신 업데이트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서 2:14~26) ...
       
 
  
 

사랑은 오래 참고 _'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시리즈 3


837
2019년 10월 27일 일요일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 고린도전서 13:7 -

대개 '오래 참음'이란 많은 시간을 지루함 속에서 기다리는 것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사랑함으로 오래 참는 것은 결코 힘들거나 지루하지 않습니다. 진실한 사랑은 상대를 위해 오래 참는 것도 즐겁고, 기다림의 시간이 길었던 만큼 그 기쁨과 행복 또한 크게 느끼며 더욱 진한 사랑으로 승화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이와 같습니다(벧후 3:8).


1.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영적인 사랑

사람들은 사랑한다 하면서도 상대가 자기에게 맞춰 주지 않으면 이내 마음이 변해 미워하고, 상대가 사랑할 만한 사람일 때는 자신을 아끼지 않고 내어 주다가도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으면 미련 없이 떠나 버리기도 합니다. 기쁜 일로는 함께하지만 힘든 일에는 함께하기를 원치 않고, 당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라면서 상대를 힘들게 하고 고통을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이처럼 자기 유익을 구하고, 썩어지고 변질되는 사랑의 모습을 보실 때에 어찌 참다운 사랑이라고 인정해 주시겠습니까? 이러한 육적인 사랑은 헛된 사랑이며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랑의 범주에 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하나님 말씀인 진리 안에서의 사랑입니다. 바로 이것이 참사랑이요, 영적인 사랑이지요.
고린도전서 13장 4~7절에는 영적인 사랑에 대한 정의가 15가지로 나와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여기에 비추어 몇 가지만 놓고 보아도 자신에게 얼마큼 사랑이 있는지, 어느 정도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행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랑을 이룬 정도에 따라 1%에서 100%까지 나눈다면 100%가 되어야 온전한 하나님 사랑의 차원에 이르렀다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1% 지키면 1%만큼, 50% 지키면 50%만큼 영적인 사랑이 임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영적인 사랑을 이룬 만큼 그 은혜와 은총도 다르며 권능 또한 다르게 나타납니다(요 14:21).


2. 영적인 사랑의 기초가 되는 '오래 참음'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영적인 사랑의 정의에서 '오래 참음'이 가장 먼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는 오래 참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피조물의 입장인 것이고, 창조주 하나님의 입장에서 오래 참음이 가장 먼저 전제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는 모든 오래 참음은 하나님의 인내하심을 나타내 주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참음이란, 화가 날 일이 생겼을 때 억지로 화를 누르며 참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말씀에 오래 참으라고 했으니까 힘들지만 꾹 참아야지' 하면서 의무적으로 참아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참음은 모두 악 속에서 참는 경우입니다. 결국 한계에 이르면 폭발해 버리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 각종 질병에 걸리기도 하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오래 참음은 영적인 참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이 전혀 없으시므로 모든 것을 사랑하고 이해하며 용서하시니 참을 일 자체가 없습니다. 다만 육을 입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오래 참으신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없었다면 우리 인간 경작도 오늘날까지 지속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악을 행할지라도 선으로 변화되기까지 기다리셨으며, 하나님을 배반하고 가증한 우상을 섬길지라도 다시금 하나님만이 참신이심을 나타내 보이시며 돌아오기를 기다리셨습니다. 이처럼 사람을 창조하시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연단해 참 자녀를 얻으시기까지 영적인 오래 참음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인내하심 속에서 그토록 원하시던 참 자녀들을 얻으실 수 있었고, 지금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그와 같이 기대하시며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창세 이래 지금까지 이 땅에서 경작을 받고 천국에 이른 사람들은 각자가 얼마큼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했는지에 따라서 천국에서 큰 자 또는 작은 자의 자리에 앉고, 큰 상 또는 작은 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사도 바울을 통해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오래 참음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경작하시는 동안 시대마다 큰 섭리를 이루시기 위해 원하시는 중심을 소유한 사람을 택해 쓰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사람을 단지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하나의 도구로써만 사용하실 목적이었다면 택하신 사람에게 무조건 큰 능력과 권세를 주어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을 이룰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실 뿐 아니라 바로 그 일을 이루게 될 사람이 하나님을 온전히 닮은 참 자녀가 되어 이 땅에서 일을 다 마친 후 천국에 이를 때 영원토록 행복을 함께 누리길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심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온전한 자리로 이끌어 가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방인의 사도였던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해 죽이기까지 하였으며, 그들을 결박해 옥에 가두는 일에 누구보다도 열심을 가지고 앞장섰습니다(행 9:1~2).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며 나타난 예수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라고 여겨서 바울 나름대로 자기 의 속에서 행한 일이었지요.
이러한 사도 바울이 주님을 만난 후로는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3)는 고백을 통해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에 가깝게 이르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로마의 시민권을 가질 정도로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고 당대 최고의 교법사였던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교육을 받아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율법적인 자기 의가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에는 오히려 걸림돌이 되어 그는 많은 연단을 받아야 했고, 그 시간들을 통해 자기 의와 모든 지식이 깨어지고 나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고백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갈 6:14).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택하여 모든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권능을 받아 큰일들을 이뤄가는 중에 옥에 갇히기도 여러 번 했으며 매도 수없이 맞았고 여러 번 죽을 뻔하는 등 많은 핍박과 환난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이런 일들을 통해 자신을 온전하게 만들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었기에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며 모든 연단을 인내로써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으며 그 뜻에 기꺼이 순복하였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그를 마음껏 다듬을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는 마지막까지도 온전히 죽어지는 것, 곧 로마에도 복음을 전하고 순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고백하며 기쁨으로 순종하였지요(행 20:24). 이를 통해 사도 바울이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맞추어 갈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4. 사랑의 첫 관문인 오래 참음을 이루어야

우리가 하나님 사랑의 차원에 들어가기 위해서, 또한 사랑의 가장 기본이 되는 오래 참음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린도전서 13장 7절에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말씀한 대로 소망 중에 모든 것을 믿으면 모든 것을 견딜 수 있게 되어 오래 참을 수 있게 됩니다.
여기에서 '모든 것을 참는다'는 것은 사랑장에 임해 있는 진리의 말씀과 위배되는 것, 다시 말해서 사랑에 위배되는 모든 것을 참을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참음에 있어서 모든 것을 믿어 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 안에 소망을 이루고 소망 안에서 사랑을 나누게 되니 모든 것을 참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었지만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인해 구원의 은총이 임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상대방이 비록 부족할지라도 그의 모든 것을 믿어 주어야 합니다. 이는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며, 이러한 사랑으로 상대를 믿어 줄 때 모든 것을 바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오래 참으심으로 기대하시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랑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픔도 있지만, 이 모든 과정을 잘 견딤으로 영적인 사랑의 첫 관문인 오래 참음을 멋있게 통과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모든 분야를 진리로 참아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 안에 깃들어서 누구에게나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추천 검색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