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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20일 월요일 오후 1:15
 
 

'십자가의 도' 시리즈 18 - 믿는다면서도 구원받지 못하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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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요한일서 5:16~17) ...
       
 
  
 

'십자가의 도' 시리즈 12 - 십자가의 처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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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20일 일요일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요 19:23~24)


예수님께서는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온몸에 심한 채찍질을 당해 피투성이가 되신 채 사형집행 장소인 골고다 언덕에 도착하셨습니다. 이때 로마 병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뒤 겉옷을 네 깃으로 나누어 가졌으며 속옷은 나누지 않고 제비뽑았지요.
이처럼 벌거벗은 수치를 당하신 예수님의 옷에 담긴 섭리와 예수님께서 손과 발에 못 박히신 이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벌거벗긴 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이십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백성이 지켜보는 앞에서 겉옷과 속옷이 모두 벗긴 채 십자가에 달려 참으로 감당하기 힘든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이처럼 수치를 당하신 까닭은 바로 우리가 받아야 하는 수치와 부끄러움을 대신 감당하시기 위함입니다.
만일 몸에 더러운 오물이 묻어 심한 악취가 난다면 즉시 씻어낼 것입니다. 이러한 오물보다 더 추하고 부끄러운 것이 죄인데, 많은 사람이 죄 가운데 살다보니 죄에 대해 무감각해졌지요. 그러나 빛이 비취면 더러운 것이 드러나듯이 빛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 마음을 비춰 보면 자기 안에 있는 부끄러운 죄들이 밝히 드러납니다. 죄악 가운데 살던 사람들은 장차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자신의 더러운 마음과 행실이 낱낱이 드러나므로 감히 고개를 들 수가 없게 되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고 우리가 받아야 할 수치와 능욕을 대신 감당하셨으므로 이를 믿는 우리는 죄인이 당할 부끄러움에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 중심에서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신속히 온전한 성결을 이룸으로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2. 예수님 겉옷을 네 깃으로 나누게 하신 섭리

로마 병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뒤 겉옷을 네 깃으로 나누어 가졌으며 속옷은 나누지 않고 제비뽑았습니다(요 19:23~24). 이는 시편 22편 18절에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라고 예언된 말씀을 응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로마 병사들이 예수님의 옷을 취하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이 예수님의 옷에 대해 구체적으로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예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겉옷은 무엇을 의미하고, 왜 네 깃으로 나누어 한 깃씩 가졌으며, 이 말씀을 미리 기록해 놓으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의 왕이므로 여기서 '예수님의 겉옷'은 '이스라엘' 또는 '유대 민족'을 지칭합니다. 그런데 로마 병사들이 옷을 네 깃으로 나눔으로써 옷의 형체가 없어졌으니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망해 없어질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옷 조각은 남았으니 나라는 없어져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만은 남을 것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의 겉옷이 네 깃으로 나뉜 것처럼, 결국 나라가 망해 유대인들이 동서남북으로 흩어진 것을 우리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지 40년이 채 못 되어 예루살렘은 로마의 타이터스 장군에 의해 함락되었고, 성전 건물은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져 버렸습니다(눅 19:43~44). 이스라엘이라는 이름만 남았을 뿐 나라가 없어지니 백성은 사방으로 흩어져 핍박받거나 죽음에 이르렀는데, 이것이 오늘날까지도 유대인이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이유입니다.
마태복음 27장 23절을 보면 빌라도가 예수님의 무죄를 인정하자 악의에 찬 군중은 더욱 소리 높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빌라도는 죄 없는 사람의 억울한 죽음에 자신이 관계없다는 뜻으로 물을 가져다가 손을 씻으며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했지요. 이에 유대인들은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외쳤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처럼 말한 것이 유대인과 그 자손들에게 그대로 보응되었다는 점입니다. 곧 이스라엘이 함락될 때에 무려 11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됐을 뿐 아니라 2차 세계대전 때에는 약 6백만 명의 유대인이 나치에 의해 희생됐지요. 그들은 벌거벗긴 채 참혹하게 죽어 갔는데, 이는 그들이 구세주를 알아보지 못하고 유대인의 왕이며 죄가 없는 예수님을 벌거벗겨 십자가에 처형하면서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고 말한 것이 엄청난 환난으로 임한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속옷을 나누지 않고 제비뽑은 섭리

예수님의 속옷은 호지 않고 통으로 짠 것이라 했습니다(요 19:23). 여기서 '속옷'은 '사람의 마음'을 의미하지요. 이스라엘의 왕이신 예수님의 속옷은 이스라엘 후손들의 마음을 의미하며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신앙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시조는 야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시고, 그의 열두 아들로 이스라엘 나라의 열두 지파를 형성하셨습니다(창 35:10~11). 이로써 이스라엘은 야곱의 열두 아들에 의해 기틀이 형성되어 순수한 단일민족으로 내려오다가 솔로몬왕의 아들인 르호보암 때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었지요. 그 후 북이스라엘은 이방인과 결합하였으나 남유다는 단일민족으로 내려왔는데, 이들이 바로 오늘날 유대인이라 불립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속옷이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는 말씀은, 곧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야곱에 의해 형성된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방인과 섞이지 않은 순수한 단일민족'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해 선택받은 백성으로서 참 신이신 하나님 한 분만을 첫째로 섬겨 왔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속옷을 찢지 않았다는 것은 비록 이스라엘 민족이 나라를 빼앗기더라도 이스라엘을 이루는 유대인의 민족정신, 즉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만은 찢어지지 않고 보전된다는 것입니다.
설령 이스라엘이 이방인에게 멸망해 나라 형체가 없어진다 해도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 중심에 계신 하나님, 즉 하나님을 향한 마음만은 이방인들이 없앨 수 없음을 예언한 것이지요. 변함없는 중심을 소유한 민족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택하시고 성경에 기록한 대로 하나님 나라와 의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들의 율법을 지키려는 변함없는 중심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변함없는 야곱의 중심을 혈통으로 이어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은 나라를 잃은 지 오랜 세월이 지난 1948년 5월 14일에 독립하여 전 세계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또한 독립한 뒤 짧은 기간에 선진국가로 떠오르면서 그들 민족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다시 한번 확증하였지요.
호지 않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예수님의 속옷을 로마 병사들이 찢을 수 없었던 것처럼, 어떤 이방인도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빼앗을 수 없었고 결국 그들은 독립하여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룬 것입니다.


4. 양손과 양발에 못 박혀 피 흘리신 예수님

아무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큰 못이 생살을 뚫고 들어오는 고통뿐 아니라 체중으로 인해 못 박힌 양손과 양발이 찢기는 고통을 당하셔야 했습니다.
십자가 처형은 죽을 때까지 십자가에 매달려 피와 물을 다 쏟아야 하기에 갈증과 탈진으로 인한 고통을 도저히 짐작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는 사막 지대의 독한 벌레 떼가 피 냄새를 맡고 몰려와 상처 난 몸과 양손과 양발에서 흐르는 피를 빨아 먹고, 악한 백성은 죄 없는 예수님을 희롱하고 손가락질하면서 침을 뱉고 갖가지 욕설을 퍼부었지요. 이같이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참으로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엄청난 고통이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손과 발에 못 박히셔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바로 사람이 손과 발로 지은 모든 죄를 대속하시기 위함입니다.
마가복음 9장 43~45절에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양손과 양발에 못 박혀 피 흘리심으로 우리가 손과 발로 범하는 죄를 대속해 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혈기가 나면 손으로 사람을 때리기도 하고 때로는 도적질과 도박을 해 패가망신합니다. 그런가 하면, 발로 폭력을 행하고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가서 죄를 짓기도 하지요. 도둑질하려고 해도 발을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니 발을 움직여 죄 짓고 지옥에 가느니 차라리 그것을 잘라 버리고 절뚝발이로 천국에 가는 편이 낫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눈으로 좋은 것을 보면 탐심이 일어나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봄으로써 간음도 합니다. 그러니 차라리 눈을 빼내 죄 짓지 않음으로써 천국 가는 게 낫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구약 시대에는 눈으로 죄를 지으면 눈을 빼야 했고 손으로 죄를 지으면 손을, 발로 죄를 지으면 발을 잘라야 했으며, 살인하거나 간음하면 돌로 쳐 죽이게 되어 있었습니다(신 19:19~21). 만일 십자가 고난이 없었다면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백성은 손으로 죄를 지으면 손을, 발로 죄를 지으면 발을 찍어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양손과 양발에 못 박히심으로써 보혈을 흘려 손과 발로 짓는 죄를 모두 씻어 주셨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범죄한 손과 발을 자르지 않아도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고 더 나아가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버릴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음으로 지옥 불에 던짐받지 않도록 예수님께서 참혹한 십자가의 고난을 친히 당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며 진정 죄를 회개하고 돌이킬 때 주님의 보혈로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요일 1:7).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손과 발에 못 박혀 고통받으셨음을 정녕 믿는 사람은 다시 죄를 범할 수가 없습니다. 범죄한 것을 마음 중심에서 회개하고 돌이켰다면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지을 수가 없지요. 그래서 죄를 버리지 않고 예전 모습 그대로 사는 사람은 참 믿음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며 구원과도 상관이 없습니다.
물론 믿음이 약할 때는 거듭 범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중심으로 회개하고 다시 죄를 버리기 위해 노력해 나가면 하나님께서도 용서해 주시지요. 다시 은혜를 주시고 죄를 버릴 능력을 주십니다. 죄를 버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 사람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가능하지요. 하나님 자녀라면 마땅히 죄를 버리고 거룩해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루살렘의 함락이나 유대인들의 고난, 이스라엘의 멸망과 재건 등 모든 것이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아직 성취되지 않은 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로서, 그중 하나가 주님께서 우리를 데리러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여 깨어 기도하며 신속히 신부 단장을 마치고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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