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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20일 월요일 오후 1:12
 
 

'십자가의 도' 시리즈 18 - 믿는다면서도 구원받지 못하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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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요한일서 5:16~17) ...
       
 
  
 

'십자가의 도' 시리즈 15 - 예수님의 가상칠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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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1일 일요일


"예수께서…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요한복음 19:26~29)
"제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마태복음 27:46)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유언처럼 마지막으로 남기신 일곱 가지 말씀이 바로 가상칠언(架上七言)입니다. 지난 호에 이어 예수님께서 남기신 가상칠언 중 제3~5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제3언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요한복음 19장 26절에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했습니다. 여기서 아들이란 곁에 선 사랑하는 제자 요한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예수님께서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요한을 아들처럼 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신을 낳아 준 마리아를 향해 '어머니'라 부르지 않고 '여자여'라고 부르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를 '어머니'라고 부르신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모친'이라는 표현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제자 요한의 입장에서 기록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2장에는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첫 표적이 기록돼 있습니다. 이때도 동정녀 마리아를 "여자여"라고 부르셨지요. 이같이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섭리를 완성하고 공생애를 마감하는 자리에 이르기까지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여자여'라고 부르심으로 구세주로서 이 땅에 온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스스로 계신 분이며(출 3:14),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근본 하나이며 삼위일체 하나님 중 한 분입니다. 이러한 예수님께서 피조물인 마리아에게 '어머니'라 부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유전적으로도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잉태될 때는 아버지의 정자와 어머니의 난자가 결합하게 되는데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몸을 빌렸을 뿐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셨기 때문입니다. 아기가 인큐베이터 안에서 자랐다고 해서 인큐베이터가 아기의 부모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이 마리아가 예수님의 어머니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를 어머니라 부르지 않고 '여자여'라고 표현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들이 동정녀 마리아를 주님의 거룩한 어머니라고 표현한다거나 마리아 형태의 상을 만들어 그 앞에 경배하는 것이 얼마나 진리에 합당치 않은지를 알아야 합니다(출 20:4).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찢어지는 고통을 당하는 동정녀 마리아를 위로하며,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리아를 어머니처럼 섬겨야 함을 알려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 중에도 사후의 일까지 살피는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지요. 그리하여 요한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마리아를 집에 모시고 친어머니처럼 섬기며 살게 됩니다.
마리아는 동정녀로서 예수님을 낳은 후, 남편인 요셉과의 사이에 여러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를 그 자녀들에게 부탁하지 않으시고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깨우쳐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빌립보서 3장 20절에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말씀한 대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늘에 속한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을 영접하여 천국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영적인 가족이지요.
우리가 육의 부모를 통해 이 땅에 태어났지만 부모의 정자와 난자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요,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인류의 시조인 아담의 생명도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빚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셨으니 근본적으로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지요. 또한 사람이 결혼하여 자녀를 낳는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생명을 잉태할 수 없고 잉태된 아이에게 영혼을 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소관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영혼을 주시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며, 이런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인 아버지가 되시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상 정욕을 따라 살아간다면 이는 마귀의 자녀이므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습니다(요 8:44). 그러니 이 땅에서 혈연관계로 맺어진 가족이라 해도 주님을 믿지 않는 가족은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예수님께서도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말씀하시며 참된 가족, 영적인 가족에 대해 알려 주셨습니다(마 12:50). 육의 가족을 사랑하고 섬기되 하나님 앞에 합당한 영적인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훼방하고 하나님 뜻과 반대되게 행하는 가족에게 맞춰준다면 그것은 참된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반드시 진리 안에서 사랑하고 섬겨야 하지요. 또한 진정 가족을 사랑한다면 무엇보다 함께 구원받고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전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영원한 천국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진정한 가족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제4언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마태복음 27장 46절에 "제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했습니다. 마가복음 15장 25절에는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했으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혹독한 고통을 받으며 여섯 시간째 매달려 계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곧 우리나라 시간으로 환산하면,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혀 달린 지 여섯 시간이 지난 오후 3시 즈음에 큰 소리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치신 것입니다.
혹자는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신 말씀을 예수님께서 심한 고통으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하시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원망하시거나 고통으로 인해 탄식하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 땅에 오시기 전부터 이미 앞으로 될 일을 다 아셨고 십자가의 고통에 대해서도 다 아셨지요. 그럼에도 아버지의 섭리를 이루시기 위해 기꺼이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더구나 모든 고통이 끝날 때가 되었는데, 이제 와서 하나님을 원망하실 리가 없지요. 따라서 이 말씀에는 중요한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먼저, 이 말씀을 하실 때 예수님께서는 "크게 소리 질러"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밤새 끌려 다니며 심문을 받으셨고, 심한 채찍질을 당하셨으며, 십자가에 못 박힌 채 여섯 시간을 피 흘리며 매달려 계셨습니다. 이처럼 소리 지르실 만한 기운이 남아 있지 않은 상황임에도 힘을 다해 큰 소리로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모든 사람이 이 말씀을 듣고 '왜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버림받으셔야 했는지, 참혹한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셔야만 했는지'를 깨닫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예수님께서는 저주받은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으셨습니다. 이는 죄인 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함이었지요. 모든 사람이 율법의 저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을 운명이었기에 예수님께서 대신 저주를 받아 버림받으신 것입니다. 이런 의미를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는 온 힘을 다해 외치셨던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독생자까지 내어 주셨건만 여전히 수많은 사람이 이를 알지 못하고 세상과 짝해 사망의 길로 가기 때문입니다. 모든 영혼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를 알아서 구세주로 영접하고 생명을 얻기 원하셔서 무지한 사람들이 하나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도록, 또한 회개해 구원의 길로 돌이켜야 함을 간절히 외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부르실 때 항상 친근하게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유독 본문에서만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셨지요.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저주를 대신 지시고 죄인의 신분으로 십자가에 달리셨으니 거룩하신 하나님을 감히 '아버지'라 부르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를 믿는다 하면서 여전히 죄 가운데 살 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당하게 기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대적, 원수 마귀 사단이 미혹하는 대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담대하게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 죄를 용서받고 빛 가운데 행함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참 자녀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로 인해 버림받아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음을 마음 중심에서 믿는다면, 더 이상 죄 가운데 거하지 말고 거룩히 구별된 삶을 살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십자가의 도를 열심히 전하여 진리를 알지 못하고 사망으로 가는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3. 제5언 "내가 목마르다"

사람이 피를 많이 흘리면 심한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더구나 예수님께서는 오랜 시간을 뜨거운 햇볕 아래서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 상태였지요. 그러나 이때 예수님께서 "목마르다" 하신 것은 단순히 갈증을 호소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곧 예수님의 핏값을 찾아드림으로 그 갈증을 해소시켜 달라고 당부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예수님의 핏값을 찾아드릴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피 흘리신 까닭은 죄인 된 인류를 구속하시기 위함이므로 예수님의 핏값을 찾아드리는 것은 지옥으로 갈 영혼들을 전도하여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직접 전도하는 것 외에도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하거나 선교를 위해 물질을 심는 등 간접적으로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목마르다" 말씀하시니 어떤 사람이 해융에 적신 신 포도주를 예수님의 입에 대어 드렸습니다. 이때 신 포도주를 입에 대신 것은 갈증을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구약의 예언(시 69:21)대로 신 포도주를 맛보셔야 하는 영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신 포도주를 맛보신 것은 영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이는 예수님께서 신 포도주를 드시고 우리에게는 새 포도주를 마시게 하셨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신 포도주, 곧 오래되어 묵은 포도주는 구약의 율법을 의미하며 새 포도주는 예수님으로 인해 완성된 신약의 사랑의 법을 의미하지요.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죄인들은 반드시 죄에 따른 형벌을 받아야 하고 죄 사함을 받으려면 매번 짐승을 잡아 피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친히 속죄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율법의 모든 저주를 속량하셨으니, 곧 우리를 위해 신 포도주를 받으신 것이지요. 따라서 이를 믿고 마음 중심에서 회개하면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새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요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을 깨우쳐 주시고자 "내가 목마르다" 말씀하시며 신 포도주를 받아 입에 대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상칠언의 영적인 의미를 마음에 깊이 새겨 날마다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삶을 살며, 장차 천국에서도 가장 영광스러운 처소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획.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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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십자가의 도' 시리즈 18 - 믿는다면서도 구원받지 못하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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