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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9일 화요일 오전 7:39
 
 

'선' 시리즈 14 - 엘리야의 선(善)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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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 수레와 불 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열왕기하 2:11) ...
       
 
  
 

'선' 시리즈 12 - 아브라함의 선(善)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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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26일 일요일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세기 13:8~9)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해 오직 예와 아멘으로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실 때 목적지조차 알지 못했지만 모든 것을 버려두고 순종했지요. 백 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셨을 때도 즉시 순종했습니다. 그는 선하신 하나님,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소유했으며 그 마음에 지극한 선이 있었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 복의 근원,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선하다 인정하시고 깊이 사랑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1. 관용과 양순의 마음

'관용'이란 진리가 마음에 풍성하게 임하면서 동시에 진리의 자유함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것을 다 내어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양순'이란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진리 안에서 이것도 가하고 저것도 가한 마음이되 그중에서도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는 편을 택할 수 있는 마음이지요. 이러한 관용과 양순의 마음이 임하면 선하고 아름다운 말과 행함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어떠한 말과 행함 속에서 관용과 양순의 마음을 느낄 수 있을까요? 조카 롯에게 먼저 좋은 땅을 취하도록 선택권을 양보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롯은 아브라함이 하나님 뜻에 따라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올 때부터 함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실 때 롯도 더불어 축복받았는데, 둘 다 소유가 불어나자 더 이상 동거할 수가 없게 되었지요. 많은 수의 가축이 함께 거하기에는 물도, 목초지도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들이 서로 다투는 일들이 일어나곤 했지요. 이때 모든 일에 화평하길 원했던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제안합니다.
창세기 13장 8~9절에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했지요. 이처럼 아브라함은 질서상 자신이 먼저 취할 수 있는데도 조카에게 양보했습니다. 그런데 롯은 삼촌 아브라함의 호의를 사양하지 않고 기름진 땅을 택해 떠납니다.
만일 여러분이 조카 롯의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때는 이때다.' 하고 롯처럼 얼른 좋은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삼촌에게 양보하시겠습니까? 사람의 도리를 알고 은혜를 안다면 자신이 척박한 땅을 먼저 택해서라도 삼촌에게 좋은 땅을 취하게 할 것입니다. 그런데 롯은 사양하지 않고 자기 보기에 좋은 땅을 택해 떠났으니 그 마음 됨이 어떠한지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롯에 대해 어떤 서운함이나 아무 걸림이 없었지요.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주고 또 줄 수 있는 관용의 마음과 이도 저도 가하되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는 편을 택할 수 있는 양순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심에서 상대를 섬기니 소자에게도 자신이 누릴 권리를 내주고 더 달라고 해도 기꺼이 줄 수 있었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에게는 관용의 마음이 얼마나 임해 있으신지요? 여러분이 소유한 10개의 물건을 상대가 달라할 때 몇 개나 주실 수 있는지요? 이는 사람 마음의 크기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상대가 10개를 달라 하면 다 줄 수 있는 마음이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기쁨으로 내어 줄 수 있는 아브라함의 관용과 양순의 마음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선입니다.


2. 사심이 없고 정직하며 성실한 마음

아브라함은 크고 좋은 그릇으로, 정직하고 매사에 성실했습니다. 모든 일을 철저하고 정확하게 처리함으로써 완벽하게 이루고자 하였지요. 자신은 아무것도 아님을 중심에서 인정하는 낮은 마음이되 하나님 이름으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온전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어려움이 와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고, 이에 더해 정직하고 성실하게 행해 나가니 곧 축복의 길이 되었지요. 바로 이러한 점이 하나님께서 보실 때 선으로 인정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기록된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아브라함의 정직함과 성실함을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 14장에 보면 소돔 땅에 거하던 조카 롯이 전쟁에 휘말려 포로로 잡혀갔을 때, 아브라함은 가신들을 이끌고 나가 롯을 구하고 소돔 왕에게 승리를 안겨 줍니다. 이에 소돔 왕은 그에게 전리품을 주려 하지만, 아브라함은 이를 거절하지요.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창 14:22~23) 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요, 소돔 왕에게 큰 은혜를 베푼 은인으로서 전리품을 취한다고 해도 결코 부당하게 자기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아브라함에게 조금이라도 사심이 있었다면 전리품을 취하는 것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공로에 대한 대가이니 정당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가능한 일이었으니 결국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복이라고 떳떳하게 받고자 했겠지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어떠한 사사로운 유익도 취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또한 모든 축복을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받으려 했습니다. 훗날 자신이 더 부유해졌을 때 소돔 왕이 전리품을 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기에 단호히 사양했지요. 사람 편에서 자기 유익을 좇아 부를 쌓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잘되는 만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으로만 부해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마음이 하나님 앞에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선하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이로써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의 길로 인도받아 갈 수 있었지요(잠 11:3).
우리가 하나님께 축복받기를 원한다면 아브라함처럼 정직해야 합니다. 자기 욕심을 따라 당장 눈에 보이는 유익을 좇으면 하나님께 축복받을 수가 없습니다.
잠언 28장 10절에 "정직한 자를 악한 길로 유인하는 자는 스스로 자기 함정에 빠져도 성실한 자는 복을 얻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악한 길로 유인하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마음에 욕심이 있으면 미혹을 받아 시험에 들고 함정에 빠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의 매장지를 구할 때는 어떠한 말과 행함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았을까요? 창세기 23장을 보면 헷 족속이 장사할 굴을 거저 주겠다고 했지만, 아브라함은 정당한 값을 치르고 매장지인 막벨라 굴을 얻습니다. 이 또한 조금도 사심이 없으며 정당하지 않은 것은 받지 않는 정직함과 성실함이 그 마음에 가득함을 보여 주지요.
이처럼 아브라함이 값을 주고 확실하게 자신의 소유로 삼은 것은 선의 지혜가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훗날 그들의 마음이 변해 땅을 돌려 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근본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없도록 깔끔하게 처리한 것입니다(창 23:16~18).
창세기 21장에는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늑탈한 일이 나옵니다. 이때도 아브라함은 잘잘못을 가리며 아비멜렉에게 보상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암양 새끼 일곱 마리를 그에게 주면서 우물에 대한 자신의 소유권을 확실히 하였습니다. 상대의 잘못이 분명하지만, 자신의 편에서 먼저 화평을 좇고 이후에 다시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지혜롭게 해결한 것입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상대의 잘못만 꾸짖고 말았다면, 아비멜렉은 진심으로 뉘우치기보다는 할 수 없이 물러나는 것이기에 참된 화평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다시 궁지에 몰거나 기회가 되면 우물을 늑탈할 수도 있지요. 그래서 아브라함은 피해를 보상해야 할 아비멜렉에게 오히려 우물 값을 치렀던 것입니다. 결국 아비멜렉은 마음 중심에서 아브라함에게 굴복하고 그 후로는 우물을 넘보지도 않았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의 길로 인도받아 나가는 과정에서 항상 선의 지혜로써 일을 처리해 나가므로 그 결과가 깔끔하고 완벽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문제의 소지도 없이 모든 일이 화평하게 잘 마무리되었지요.
하나님 나라를 이룰 때도 선의 지혜를 소유하면 원하는 바를 방해받지 않고 신속하게 이룰 수 있습니다. 혹여 내게 잘못한 상대라도 나를 돕는 사람으로 만들 수 있지요. 그런데 이러한 선의 지혜는 먼저 자신의 것을 내 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되고, 아무런 사심 없이 정직하게 행할 때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처럼 선의 지혜가 임하면 어떤 일도 화평함 가운데 해결할 수 있고,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불리한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을 사모하여 아름다운 말과 행함을 이루심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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