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¹Î´º½º, ¸¸¹Î, ¸¸¹Î±³È¸, ¸¸¹Î´º½º, ÀÌÀç·Ï, Àç·Ï, ´ÚÅ͸®
2024ë…„ 5ì›” 17ì¼ ê¸ˆìš”ì¼ ì˜¤ì „ 10:4
 
 

ì˜ì¸ì€ 믿ìŒìœ¼ë¡œ 살리ë¼
ÃֽŠ¾÷µ¥ÀÌÆ®
"ê·¸ ì¼ í›„ì— í•˜ë‚˜ë‹˜ì´ ì•„ë¸Œë¼í•¨ì„ 시험하시려고 그를 ë¶€ë¥´ì‹œë˜ â€¦ 네 아들 네 사랑하는 ë…ìž ì´ì‚­ì„ ë°ë¦¬ê³  모리아 땅으로 가서 ë‚´ê°€ 네게 지시하는 í•œ ì‚° 거기서 그를 번제로 ë“œë¦¬ë¼ â€¦
ê·¸ 아들 ì´ì‚­ì„ 결박하여 단 나무 ìœ„ì— ë†“ê³  ì†ì„ 내밀어 ì¹¼ì„ ìž¡ê³  ê·¸ ì•„ë“¤ì„ ìž¡ìœ¼ë ¤ 하ë”니 …
ê·¸ ìˆ˜ì–‘ì„ ê°€ì ¸ë‹¤ê°€ ì•„ë“¤ì„ ëŒ€ì‹ í•˜ì—¬ 번제로 드렸ë”ë¼"(창세기 22:1~13) ...
       
 
  
 

'위로부터 ë‚œ 지혜' 시리즈 1 - ì„±ê²°ì˜ ì§€í˜œ


1254
2022ë…„ 9ì›” 11ì¼ ì¼ìš”ì¼


"ì˜¤ì§ ìœ„ë¡œë¶€í„° ë‚œ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ìŒì— í™”í‰í•˜ê³  … 편벽과 ê±°ì§“ì´ ì—†ë‚˜ë‹ˆ
í™”í‰ì¼€ 하는 ìžë“¤ì€ í™”í‰ìœ¼ë¡œ 심어 ì˜ì˜ 열매를 ê±°ë‘ëŠë‹ˆë¼"(야고보서 3:17~18)


사람마다 귀하게 여기는 ê²ƒì´ ìžˆìŠµë‹ˆë‹¤. ì–´ë–¤ ì‚¬ëžŒì€ ëª…ì˜ˆë¥¼, ì–´ë–¤ ì‚¬ëžŒì€ ê¶Œì„¸ë¥¼, ì–´ë–¤ ì‚¬ëžŒì€ ì§€ì‹ì´ë‚˜ ìž¬ë¬¼ì„ ì†Œì¤‘í•˜ê²Œ ìƒê°í•©ë‹ˆë‹¤.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ì„±ê²½ì„ í†µí•´ ë¬´ì—‡ì„ ê°€ìž¥ 귀히 여긴다고 ë§ì”€í•˜ì…¨ì„까요?
ìž ì–¸ 3장 13~17ì ˆì— "지혜를 ì–»ì€ ìžì™€ ëª…ì² ì„ ì–»ì€ ìžëŠ” ë³µì´ ìžˆë‚˜ë‹ˆ ì´ëŠ” 지혜를 얻는 ê²ƒì´ ì€ì„ 얻는 것보다 ë‚«ê³  ê·¸ ì´ìµì´ 정금보다 나ìŒì´ë‹ˆë¼ … ê·¸ 우편 ì†ì—는 장수가 있고 ê·¸ 좌편 ì†ì—는 부귀가 있나니 ê·¸ ê¸¸ì€ ì¦ê±°ìš´ 길ì´ìš” ê·¸ ì²©ê²½ì€ ë‹¤ í‰ê°•ì´ë‹ˆë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귀히 여기며 ê·¸ ì´ìµì´ 정금보다 낫다고 ë§ì”€í•˜ì‹­ë‹ˆë‹¤. ì‚¬ëžŒë“¤ì´ ê·€í•˜ê²Œ 여기는 금ì´ë¼ í•´ë„ ê·¸ê²ƒì´ ì°¸ ìƒëª…ê³¼ í‰ì•ˆì„ 가져다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금ë©ì–´ë¦¬ë¥¼ 가지고 있으면 불안할 ìˆ˜ë„ ìžˆì§€ìš”. 하지만 지혜는 누가 í›”ì³ ê°ˆ 수 있는 ê²ƒì´ ì•„ë‹™ë‹ˆë‹¤. ë˜í•œ ì–¼ë§ˆí¼ í™œìš©í•˜ëŠëƒì— ë”°ë¼ ê·¸ 가치가 측량할 수 ì—†ì´ ì»¤ì§‘ë‹ˆë‹¤. 그래서 ìž ì–¸ 4장 7ì ˆì— "지혜가 ì œì¼ì´ë‹ˆ 지혜를 얻으ë¼â€¦"ê³  당부하고 계십니다
고린ë„ì „ì„œ 1장 25ì ˆì—는 "í•˜ë‚˜ë‹˜ì˜ ë¯¸ë ¨í•œ ê²ƒì´ ì‚¬ëžŒë³´ë‹¤ 지혜 있고 í•˜ë‚˜ë‹˜ì˜ ì•½í•œ ê²ƒì´ ì‚¬ëžŒë³´ë‹¤ 강하니ë¼" 했고, 3장 18~20ì ˆì—는 "… ë„ˆí¬ ì¤‘ì— ëˆ„êµ¬ë“ ì§€ ì´ ì„¸ìƒì—ì„œ 지혜 있는 줄로 ìƒê°í•˜ê±°ë“  미련한 ìžê°€ ë˜ì–´ë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ìžê°€ ë˜ë¦¬ë¼ ì´ ì„¸ìƒ ì§€í˜œëŠ” 하나님께 미련한 것ì´ë‹ˆâ€¦" ë§ì”€í•˜ê³  있습니다.
세ìƒì—서는 악하고 ê°„êµí•œ ê¾€ë„ ì§€í˜œë¼ê³  여기는 ì‚¬ëžŒë“¤ì´ ìžˆëŠ”ë° ê³¼ì—° 그럴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ì•…í•œ 꾀를 ì¨ì„œ ì–»ì€ ì—´ë§¤ëŠ”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수 없으니 ë§Žì€ ê²ƒì„ ì–»ì—ˆë‹¤ í•´ë„ ì–¸ì œë“ ì§€ 사ë¼ì§ˆ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선하신 í•˜ë‚˜ë‹˜ì˜ ì§€í˜œë¥¼ 받으면 모든 ì¼ì— 형통하며 가정ì´ë‚˜ í•™êµ, ì§ìž¥ 등 ìžì‹ ì´ 있는 ê³³ì—ì„œ 사랑받고 하나님께 ì˜ê´‘ì„ ëŒë¦´ 수 있습니다.


1. '위로부터 ë‚œ 지혜'란 무엇ì¸ê°€?

야고보서 3장 17ì ˆì— "ì˜¤ì§ ìœ„ë¡œë¶€í„° ë‚œ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했는ë°, 여기서 '위로부터 ë‚œ 지혜'란 í•˜ë‚˜ë‹˜ì˜ ì§€í˜œë¥¼ ë§í•©ë‹ˆë‹¤.
ìž ì–¸ 9장 10ì ˆì— "여호와를 경외하는 ê²ƒì´ ì§€í˜œì˜ ê·¼ë³¸ì´ìš”…" 했고, 16장 6ì ˆì—는 "…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ì¸í•˜ì—¬ ì•…ì—ì„œ 떠나게 ë˜ëŠë‹ˆë¼" 했습니다. 즉 선하신 í•˜ë‚˜ë‹˜ì„ ê²½ì™¸í•˜ì—¬ ì•…ì€ ëª¨ë“  모양ì´ë¼ë„ 버리고 ì„±ê²°ì„ ì´ë£¨ëŠ” ê²ƒì´ í•˜ë‚˜ë‹˜ì˜ ì§€í˜œë¥¼ 받는 길입니다. ì„ ê³¼ 사랑, 진리 ìžì²´ì´ì‹  예수님께서는 í•˜ë‚˜ë‹˜ì˜ ì§€í˜œë¡œ ë§ì”€í•˜ê³  행하셨습니다.
ëˆ„ê°€ë³µìŒ 10ìž¥ì„ ë³´ë©´ í•œ 율법사가 ì˜ˆìˆ˜ë‹˜ì„ ì‹œí—˜í•˜ê¸° 위해 어떻게 ì˜ìƒì„ ì–»ì„ ìˆ˜ 있는지 묻습니다. ê·¸ëŸ¬ìž ì˜ˆìˆ˜ë‹˜ê»˜ì„œëŠ” ìœ¨ë²•ì‚¬ì˜ ì˜ë„를 간파하시고 "ìœ¨ë²•ì— ë¬´ì—‡ì´ë¼ 기ë¡ë˜ì—ˆìœ¼ë©° 네가 어떻게 ì½ëŠëƒ?"ê³  ë˜ë¬¼ìœ¼ì…¨ì§€ìš”.
ì´ì— 율법사는 "네 마ìŒì„ 다하며 ëª©ìˆ¨ì„ ë‹¤í•˜ë©° íž˜ì„ ë‹¤í•˜ë©° ëœ»ì„ ë‹¤í•˜ì—¬ 주 ë„ˆì˜ í•˜ë‚˜ë‹˜ì„ ì‚¬ëž‘í•˜ê³  ë˜í•œ 네 ì´ì›ƒì„ 네 몸과 ê°™ì´ ì‚¬ëž‘í•˜ë¼ í•˜ì˜€ë‚˜ì´ë‹¤"ë¼ê³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ëŒ€ë‹µì´ ì˜³ë„다 ì´ë¥¼ í–‰í•˜ë¼ ê·¸ëŸ¬ë©´ 살리ë¼" ë§ì”€í•˜ì‹œì§€ìš”. ì˜ˆìˆ˜ë‹˜ì„ ì‹œí—˜í•˜ê³ ìž í–ˆë˜ ìœ¨ë²•ì‚¬ëŠ” ìžê¸° ì˜ë„대로 ë˜ì§€ ì•Šìž "그러면 ë‚´ ì´ì›ƒì´ 누구오니ì´ê¹Œ?"ë¼ê³  다시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겉으로는 í•˜ë‚˜ë‹˜ì„ ì‚¬ëž‘í•œë‹¤ê³  하지만 마ìŒì— ì‚¬ëž‘ì´ ì—†ìŒì„ 아셨습니다. 그래서 ê°ì •ì´ ìƒí•˜ì§€ 않으면서 깨우칠 수 있ë„ë¡ ì„ í•œ 사마리아ì¸ì„ 비유로 들어 설명하시지요. 'ì–´ë–¤ ì‚¬ëžŒì´ ê¸¸ì„ ê°€ë‹¤ê°€ ê°•ë„를 만나 ê±°ì˜ ì£½ê²Œ ë˜ì—ˆì„ ë•Œ ì œì‚¬ìž¥ì€ ë³´ê³  피해 지나가고 레위ì¸ë„ 마찬가지였지만 사마리아ì¸ì€ 불ìŒížˆ 여겨 ëŒë´ì£¼ì—ˆë‹¤ë©´ 네 ì˜ê²¬ì—는 누가 ê·¸ì˜ ì´ì›ƒì´ ë˜ê² ëŠëƒ?'는 것입니다.
당시 사마리아ì¸ì€ ì´ë°© 민족과 혼혈ë˜ì—ˆë‹¤ëŠ” ì´ìœ ë¡œ 유대ì¸ë“¤ì—게 천대받았습니다. 율법사는 ì–´ì©” 수 ì—†ì´ "ìžë¹„를 베푼 ìžë‹ˆì´ë‹¤"ë¼ê³  대답하지요. ê·¸ëŸ¬ìž ì˜ˆìˆ˜ë‹˜ê»˜ì„œëŠ” "ë„ˆë„ ì´ì™€ ê°™ì´ í•˜ë¼" ë§ì”€í•˜ì‹­ë‹ˆë‹¤. 율법사ì—게 ì´ì›ƒ ì‚¬ëž‘ì´ ì—†ìŒì„ ì§ì ‘ì ìœ¼ë¡œ 언급하지 ì•Šìœ¼ë©´ì„œë„ ì¶©ë¶„ížˆ 깨우칠 수 있ë„ë¡ ë¹„ìœ  들어 ë§ì”€í•˜ì‹  것입니다.
마ìŒì— ì„ ì´ ë¶€ì¡±í•œ ì‚¬ëžŒì€ ì˜ˆìˆ˜ë‹˜ê³¼ ê°™ì€ ìƒí™©ì„ 만나면 ìƒëŒ€ë¥¼ ì°Œë¥´ê¸°ë„ í•˜ê³  ë¬´ì•ˆì„ ì£¼ê¸°ë„ í•©ë‹ˆë‹¤. ì§ì ‘ì ìœ¼ë¡œ 찌르지 ì•Šë”ë¼ë„ ìƒëŒ€ì˜ ì•…í•œ ì˜ë„를 눈치채고 비꼬는 ë§ë¡œ ë˜ê°šì•„ ì£¼ê¸°ë„ í•˜ì§€ìš”.
하지만 ì„ í•œ 지혜가 있는 ì‚¬ëžŒì€ ìƒëŒ€ë¥¼ 무시하거나 ê°ì •ì„ 건드리지 않으면서 스스로 깨우칠 수 있ë„ë¡ í•©ë‹ˆë‹¤. ì´ê²ƒì´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요, 위로부터 ë‚œ ì„ ì˜ ì§€í˜œì¸ ê²ƒìž…ë‹ˆë‹¤.


2. 성결한 마ìŒì—ì„œ 나오는 ì„ ì˜ ì§€í˜œ

하나님께서는 ë¹›ì´ì‹œë©° ì„  ìžì²´ì´ì‹­ë‹ˆë‹¤. 그래서 ì£„ì•…ì„ ë²„ë¦¬ê³  ë¹› ê°€ìš´ë° ê±°í•˜ë©° 성결한 ë§Œí¼ ì„±ë ¹ì˜ ì¸ë„와 ì£¼ê´€ì„ ë°›ê³  하늘로부터 지혜를 ë°›ì„ ìˆ˜ 있습니다.
í•˜ë‚˜ë‹˜ì˜ ì§€í˜œë¥¼ 받는다는 ê²ƒì€ ì„±ë ¹ì˜ ìŒì„±ì„ 듣고 주관 받는 것과 í¡ì‚¬í•©ë‹ˆë‹¤. ì„±ë ¹ì˜ ìŒì„±ì„ 듣거나 주관 받는 ê²ƒì€ í•˜ë‚˜ë‹˜ì˜ ìžë…€ë“¤ì´ 하나님과 êµí†µí•˜ëŠ” ê²ƒì„ ë§í•©ë‹ˆë‹¤. 하나님과 êµí†µí•˜ê¸° 위해서는 마ìŒì— ì•…ì´ ì—†ëŠ” ê²ƒì´ ê¸°ë³¸ ì¡°ê±´ì´ë“¯ì´ 지혜를 ë°›ì„ ë•Œë„ ë§ˆìŒì— ì„ ì´ ìžˆëŠ” ë§Œí¼ ë” ì„¬ì„¸í•˜ê³  ê¹Šì´ ë°›ì„ ìˆ˜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는 지혜는 í•­ìƒ ì„ í•œ 방법으로 나옵니다. 마ìŒì— ì•…ì´ ìžˆìœ¼ë©´ 누군가 ì„ í•œ 지혜를 알려 준다고 í•´ë„ ê·¸ ë°©ë²•ì„ ë”°ë¥´ê¸°ê°€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마ìŒì˜ ì•…ì„ ë²„ë¦¬ëŠ” ê²ƒì´ ì§€í˜œë¥¼ 받고 지혜가 주는 유ìµì„ ì–»ì„ ìˆ˜ 있는 길입니다.
마ìŒì— ì•…ì´ ì—†ëŠ” ì‚¬ëžŒì€ ëŒ€í™”í•  ë•Œë„ ìƒëŒ€ì˜ 마ìŒì„ 헤아려 ì„ í•œ í‘œí˜„ì„ ì”니다. 곱고 ì€í˜œë¡œìš´ ë§, 누가 ë“¤ì–´ë„ ë•ìŠ¤ëŸ¬ìš´ ë§ì„ 하지요. 기ë„í•  ë•Œë„ í•˜ë‚˜ë‹˜ì˜ ë§ˆìŒì„ 아프게 í•  만한 í‘œí˜„ì€ í•˜ì§€ 않습니다.
ê·¸ëŸ°ë° ì„ í•œ ë§ì´ë‚˜ 기ë„는 ìžì‹ ì´ 노력한다고 í•´ì„œ ë˜ëŠ” ê²ƒì´ ì•„ë‹™ë‹ˆë‹¤. 마ìŒì— ì•…ì´ ìžˆìœ¼ë©´ ì€ì—°ì¤‘ì— ì•…ì´ ë°°ì–´ 나오지요. 반대로 마ìŒì´ 선하면 ìžì—°ížˆ ì„ í•œ 기ë„, ì„ í•œ ë§ë§Œ 나오는 것입니다.
살다 ë³´ë©´ ìžì‹ ì´ 하지 ì•Šì€ ì¼ì´ë‚˜ ë§ë¡œ ì¸í•´ ì£¼ë³€ì˜ ì˜¤í•´ë¥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ìžì‹ ì€ ì„ í•œ ì˜ë„ë¡œ ë§í–ˆëŠ”ë° ë„리어 난처한 ìž…ìž¥ì— ë†“ì´ê±°ë‚˜ ë¹„ë°©ì„ ë‹¹í•˜ëŠ” ê²½ìš°ë„ ìžˆì§€ìš”. ì´ëŸ´ 때는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ë„ë¡ ë§¡ê²¨ 드리는 ê²ƒì´ ë‚«ìŠµë‹ˆë‹¤.
ìžê¸° ìž…ìž¥ì„ ë³€ëª…í•˜ë©´ í• ìˆ˜ë¡ ìž˜ëª»ëœ ì¸ì‹ë§Œ 쌓ì´ê¸° 때문입니다. ë˜í•œ 변론하여 ì–µìš¸í•¨ì€ ë°í˜€ë‚¸ë‹¤ê³  í•´ë„ ê·¸ ê³¼ì •ì— íƒ€ì¸ì˜ í—ˆë¬¼ì´ ë“œëŸ¬ë‚  ìˆ˜ë„ ìžˆì§€ìš”. 설령 그렇지 않다고 í•´ë„ ì„œë¡œ ê°ì •ì´ ìƒí•´ 관계가 ë¶ˆíŽ¸í•´ì§€ê¸°ë„ í•©ë‹ˆë‹¤. ìƒëŒ€íŽ¸ì—서는 ìžê¸° ìž˜ëª»ì´ ë“œëŸ¬ë‚˜ë‹ˆ ë”ìš± ê°ì •ì„ 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디모ë°í›„ì„œ 2장 23ì ˆì— "어리ì„ê³  무ì‹í•œ ë³€ë¡ ì„ ë²„ë¦¬ë¼ ì´ì—ì„œ ë‹¤íˆ¼ì´ ë‚˜ëŠ” 줄 ì•Žì´ë¼" 했습니다. 변론하다 ë³´ë©´ ë‹¤íˆ¼ì´ ìƒê¸°ê³  í™”í‰ì´ 깨져 서로 ë“±ì„ ëŒë¦¬ëŠ” ì¼ì´ ìƒê¹ë‹ˆë‹¤.
ë”°ë¼ì„œ 지혜롭고 ì„ í•œ ì‚¬ëžŒì€ ì ˆëŒ€ 변론하지 않습니다. ì°¨ë¼ë¦¬ 잠잠하고 ìƒëŒ€ë¥¼ 품어주면 ì§„ì‹¤ì´ ì „í•´ì ¸ ìžì—°ìŠ¤ëŸ½ê²Œ 오해가 풀리지요. ì‚¬ì‹¤ì´ ë°í˜€ì¡Œì„ 때는 ìƒëŒ€ì˜ 마ìŒì´ 녹아 ê¹Šì€ ì‹ ë¢° 관계가 í˜•ì„±ë  ìˆ˜ë„ ìžˆìŠµë‹ˆë‹¤.
혹여 예ìƒì¹˜ 못한 어려운 ì¼ì´ ì™”ì„ ë•Œ '뭔가 ê¹¨ìš°ì³ ì£¼ì‹œë ¤ë‚˜ 보다.' 하고 ìƒê°ì„ 바꿔 ì„±ë ¹ì˜ ë„ì›€ì„ ë°›ì•„ 기ë„하면 ê·¸ê²ƒì´ ì˜¤ížˆë ¤ ì¶•ë³µì˜ ê¸°íšŒê°€ ë  ìˆ˜ 있습니다(ìž  3:6). 잠잠히 í•˜ë‚˜ë‹˜ì˜ ëœ»ì„ ê¹¨ë‹«ê³ ìž í•˜ë©´ ìžì‹ ì„ 발견하여 변화ë˜ëŠ” 기회로 ì‚¼ì„ ìˆ˜ 있고, 억울한 ì¼ì„ 당했다 í•´ë„ í•˜ë‚˜ë‹˜ê»˜ì„œ 다 아시고 때가 ë˜ë©´ 친히 ê°šì•„ 주시기 때문입니다. ì´ê²ƒì´ 위로부터 ë‚œ ì„±ê²°ì˜ ì§€í˜œìž…ë‹ˆë‹¤.


3. ì„ ì´ ì—†ëŠ” 지혜는 í—›ëœ ì§€í˜œ

아무리 ì§€í˜œì˜ ë§ì”€ì„ 배운다고 í•´ë„ ë§ˆìŒì— ì•…ì´ ìžˆìœ¼ë©´ ë‚´ 것으로 ì‚¼ì„ ìˆ˜ 없습니다. ìžì¡´ì‹¬ì´ ìƒí•˜ê³  억울한 마ìŒì— 입술로 ì›ë§ê³¼ 불í‰ì„ ìŸì•„낸다면 ì‹œí—˜ì„ í†µê³¼í•˜ì§€ 못하지요.
그러니 ì•…ì„ ë²„ë¦¬ê³  성결 ë  ë•Œë¼ì•¼ ì§€í˜œì˜ ì—´ë§¤ë¥¼ ë§ºì„ ìˆ˜ 있습니다. ìžì‹ ì—게 ì•…ì´ ìžˆì„ ë•Œ í‰ì†Œ ìƒëŒ€ë¥¼ 배려하지 못하는 사람, ìžì‹ ì˜ 입장ì—서만 ìƒê°í•˜ì—¬ ì›ë§ 불í‰í•˜ëŠ” ì‚¬ëžŒì€ í•˜ë‚˜ë‹˜ê»˜ë„ ê·¸ëŸ¬í•©ë‹ˆë‹¤.
예를 들어 선하고 ê°ë™ì ì¸ 기ë„를 해야 한다는 ê²ƒì„ ì•Œì•„ë„ ì•…ì´ ìžˆìœ¼ë©´ ê·¸ê²ƒì´ ê¸°ë„ ì†ì— 묻어나옵니다. 마ìŒì— ì•…í•œ ê°ì •ì´ 있으면 "선하게 기ë„하ë¼"는 ì§€í˜œì˜ ë§ì”€ì„ 듣고 안다고 í•´ë„ ê·¸ê²ƒì„ í™œìš©í•  줄 모릅니다. "ë²”ì‚¬ì— ê°ì‚¬í•˜ë¼" í•´ë„ ë§ˆìŒì— ì›ë§ì´ ê°€ë“ ì°¨ 있으니 ê°ì‚¬ì˜ í‘œí˜„ì´ ë‚˜ì˜¤ì§€ 않지요. ë¯¿ìŒ ì—†ëŠ” 부정ì ì¸ 기ë„, ë‚¨ì˜ íƒ“ì„ í•˜ëŠ” 기ë„를 í•  ìˆ˜ë°–ì— ì—†ìŠµë‹ˆë‹¤.
ë”°ë¼ì„œ ë‚´ 기ë„ê°€ 하나님께서 기ë»í•˜ì‹¤ 만한 기ë„ì¸ì§€, í•˜ë‚˜ë‹˜ì„ ì„œìš´ì¼€ 하고 ì‘답받지 못할 기ë„ì¸ì§€ 살펴보시기를 ë°”ëžë‹ˆë‹¤. 하나님께서는 ì˜ì¸ì˜ ì„ í•œ 기ë„를 기ë»í•˜ì‹œê³  ì‹ ì†ížˆ ì‘답해 주시기 때문입니다(약 5:16).
ë‹¤ìœ—ì˜ ì•„ë“¤ ì••ì‚´ë¡¬ì€ ì™¸ëª¨ê°€ 출중하고(삼하 14:25) ì§€í˜œë„ ë›°ì–´ë‚¬ì§€ë§Œ, 마ìŒì´ ì•…í•´ ìžì‹ ì˜ 지혜를 ì•…í•œ ë° ì‚¬ìš©í–ˆìŠµë‹ˆë‹¤. ì´ë³µ ë§í˜•ì¸ ì•”ë…¼ì´ ìžê¸° ì—¬ë™ìƒ 다ë§ì„ 범한 ì¼ë¡œ 분개했는ë°, 아버지 ë‹¤ìœ—ì´ ì•”ë…¼ì˜ ìž˜ëª»ì— ëŒ€í•´ 아무런 징계를 내리지 않으니 불만ì´ì—ˆì§€ìš”.
그는 ìžì‹ ì˜ ê°ì •ì„ 섣불리 드러내지 ì•Šê³  기회를 ì—¿ë³´ê³  있다가 2ë…„ ë’¤, 양털 깎는 í–‰ì‚¬ì— ì•”ë…¼ì„ ì´ˆëŒ€í•´ ë¶€í•˜ë“¤ì„ í†µí•´ 그를 죽입니다. 그리고 ë‹¤ìœ—ì„ í”¼í•´ 멀리 달아나지요. ì‹œê°„ì´ í르고 ì´ ì¼ë¡œ 슬í¼í•˜ëŠ” ë‹¤ìœ—ì˜ ë§ˆìŒì„ 헤아린 요압 ìž¥êµ°ì´ ì••ì‚´ë¡¬ì„ ì°¾ì•„ 예루살렘으로 ë°ë ¤ì™”습니다. 하지만 ë‹¤ìœ—ì€ ì´í›„ë¡œë„ 2ë…„ ë™ì•ˆì´ë‚˜ 그를 만나 주지 않았습니다.
ì´ì— ì••ì‚´ë¡¬ì€ ìžì‹ ì´ 아버지 ë‹¤ìœ—ì˜ ëˆˆ ë°–ì— ë‚¬ë‹¤ëŠ” ê²ƒì„ ì•Œê³ ëŠ” ì•™ì‹¬ì„ í’ˆê³  ë°˜ì—­ì„ ë„모합니다. 심복 ë¬´ì‚¬ë“¤ì„ í‚¤ìš°ê³  무기와 병거를 마련하며 ë°˜ëž€ì„ ì¼ìœ¼í‚¬ 친위부대를 양성하지요. 그리고 아버지 다윗 ì™•ì´ ë°±ì„±ì„ ì‚¬ëž‘í•˜ì§€ ì•Šê³  ìžì‹ ì€ ë°±ì„±ì„ ì‚¬ëž‘í•˜ëŠ” 것처럼 가장하여 êµë¬˜í•˜ê²Œ ë°±ì„±ì„ í¬ì„­í•´ ë¯¼ì‹¬ì„ ì–»ê³  신뢰를 쌓아갔습니다(삼하 15:2~6).
마침내 ì••ì‚´ë¡¬ì´ ë°˜ëž€ì„ ì¼ìœ¼í‚¤ë‹ˆ ë‹¤ìœ—ì€ í™©ë§ížˆ 쫓기는 처지가 ë˜ì—ˆìŠµë‹ˆë‹¤. ì••ì‚´ë¡¬ì€ ë‹¤ìœ—ì˜ ìˆ˜í•˜ì— ìžˆëŠ” 모사 아히ë„벨까지 ìžê¸°íŽ¸ìœ¼ë¡œ 만듭니다. 아히ë„ë²¨ì˜ ì§€ëžµì´ ì–¼ë§ˆë‚˜ 뛰어났ë˜ì§€ 그가 ì–´ë–¤ ëª¨ëžµì„ ë² í’€ë©´ ê·¸ê²ƒì´ í•˜ë‚˜ë‹˜ì˜ ë°©ë²•ê³¼ ì¼ë°˜ì´ë¼ í•  ì •ë„였습니다(삼하 16:23).
그러나 ì••ì‚´ë¡¬ì˜ ë°˜ì—­ì€ ì‹¤íŒ¨ë¡œ ë납니다. 하나님께서 ê·¸ì˜ ì§€í˜œë¥¼ 어둡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히ë„ë²¨ì´ ë‹¨ë²ˆì— ë‹¤ìœ—ì„ ì œì••í•  ìž‘ì „ì„ ë‚´ë†“ì•˜ì§€ë§Œ, ì••ì‚´ë¡¬ì€ ë‹¤ìœ—ì—게 유리한 ìž‘ì „ì„ ì œì•ˆí•œ í›„ìƒˆì˜ ë§ì„ 들었지요. 지혜로운 압살롬ì´ì—ˆì§€ë§Œ 하나님께서 ê·¸ì˜ íŒë‹¨ë ¥ì„ í리게 하시니 멸ë§ì˜ ê¸¸ì„ íƒí•˜ê³  만 것입니다.
ì´ì²˜ëŸ¼ 아무리 지혜롭다고 í•´ë„ ìœ„ë¡œë¶€í„° ë‚œ í•˜ë‚˜ë‹˜ì˜ ì„±ê²°í•œ 지혜가 아니ë¼ë©´ 물거품처럼 í—›ëœ ê²ƒìž„ì„ ê¹¨ìš°ì³ì•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ì„±ë„ ì—¬ëŸ¬ë¶„,
í•˜ë‚˜ë‹˜ì˜ ì§€í˜œëŠ” ì‚¬ëžŒì˜ ì§€í˜œë¥¼ 초월하며 세ìƒì˜ 지혜와 다릅니다. ì„ í•œ 방법으로 ì´ë¤„지기 ë•Œë¬¸ì— ê·¸ 지혜를 깨닫기 위해서ë„, ê¹¨ë‹¬ì€ ëŒ€ë¡œ ì„ ì„ í–‰í•˜ê¸° ìœ„í•´ì„œë„ ë¨¼ì €ëŠ” 마ìŒì˜ ì„±ê²°ì„ ì´ë¤„야 합니다. ì§€í˜œì˜ ê·¼ì›ì´ì‹  하나님께 ì„±ê²°ì˜ ì§€í˜œë¥¼ 구해 ë²”ì‚¬ì— í˜•í†µí•˜ë©° í’성한 열매로 ì˜ê´‘ ëŒë¦¬ì‹œê¸°ë¥¼ ì£¼ë‹˜ì˜ ì´ë¦„으로 축ì›í•©ë‹ˆ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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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사역 - 하나님과 ë™í–‰í•œ 믿ìŒì˜ 역사 ì´ìž¬ë¡ ëª©ì‚¬ì˜ ì‚¶ê³¼ 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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