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

돼지 집사가 말하는
“제 성공 비결은요”
정준환 집사
(정P&C연구소 종돈 수출입 본부장 및 해썹 팀장)
현재 축산 관련 전문 컨설턴트로 활동 중인 정준환 집사. 이른바 돼지 집사로 불리우는 그는 현재 업계에서 손꼽히는 양돈종합컨설팅업체 정P&C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곳에서 일선 농가의 축산 지도사업은 물론, 선진 축산 기술을 벤치마킹하여 국내 축산 산업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1997년 12월, 그는 아내 김혜경 집사의 꿈을 통해 우리 교회로 인도받았다. 돼지 인공수정센터에서 8년 근무하며 돼지 사육, 판매 총괄을 하던 그는 2002년도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한 마리당 5백만 원 하는 돼지 60마리를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의 기도로 지킴받는 체험을 했다. 그러나 구제역으로 인해 회사는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더 전망 있는 일을 위해 그는 창업을 시작하게 된다. 그 당시 전망 좋은 고가의 애견 사업을 하다 결국은 실패한다.
그 후 기도하던 중, 2007년 8월 정P&C연구소에 취업을 한다. 돼지 종돈 수입 파트 요원으로 일단 6개월 정도 일해보는 조건이었다. 그는 성실히 최선을 다했고, 품종 좋은 돼지 수입으로 회사 매출도 늘어갔다. 그 다음해인 2월부터는 회사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해썹(HACCP) 분야까지 배워 전문 컨설턴트가 될 수 있었다. 축산 분야의 해썹은 소비자가 사 먹는 돼지고기, 닭고기, 오리고기, 소고기에 농장에서 발생하는 유해 물질이 들어가지 않도록 미리 관리하는 것이다. 종사자 교육과 함께 국가공인업체로 지정받을 수 있도록 관리해 주는데 이 입찰 합격률이 높아지니 소문이 나 농장 계약도 쇄도했다.
주일마다 새벽 5시가 되면 그는 일어나 당회장님을 만나기 위해 준비한다. 왜 그런 것일까? 어떤 일이든 당회장님께 말씀드리고 기도를 받으면 문제가 해결되고 축복으로 이어지기 까닭이다. 신앙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처음에는 의욕이 앞서 세상과 타협하는 모습도 있었다. 하지만 점차 마음이 평안해지면서 삶의 태도가 달라졌고, 선으로 생각하며 사람들을 대하니 모든 일에 자신감도 생겼다. 강의할 때 아이디어도 떠오르고, 많은 농장과 해썹 계약 성사도 이뤄졌고, 입찰도 성공했다.
또한 기관장인 그는 선교회 일꾼들과 함께 매주 토요일마다 회원 심방을 한다. 심방을 다니며 그들의 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자신의 문제도 해결되었다. 장결자가 교회를 나오고 행복하게 간증하는가 하면, 회원들의 부모님까지 심방하며, 가정마다 복음화가 이뤄지는 기쁨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제 생각과 행함이 변화되는 체험을 통해 당회장님 앞에 나아갈 때마다 응답이 더해졌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부족한 게 많습니다. 하지만 때마다 당회장님 앞에 나가서 사업현황을 보고한 뒤 기도받으면 모든 문제가 하나같이 풀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은 확실히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믿음 안에서는 안 될 것도 되고 될 것은 더 잘되지요. 하나님의 뜻을 밝히 제시하고 기도해 주시는 당회장님을 믿고 순종함으로 제 삶에는 축복이 넘칩니다.”
지금 그는 농협중앙회 축산물 위생교육원 해썹 관련 강사로 위촉되었으며 연봉이 3배로 늘어나는 축복과 연구소 내에서도 전례 없는 인센티브를 받고 있다. 회사에서도 큰 매출 성장을 이루는 주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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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 김혜경집사, 예린, 재현, 예현이와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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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종돈수입 출장(정준환 집사 왼쪽 두 번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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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돈선발(정준환 집사 맨 우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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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썹 양계전문컨설턴트교육을 하고 있는 정준환 집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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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 결석 회원 심방간 날 1965년생들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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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지 집사 별명 얻고
놀라운 축복을 받다
고대영 집사
(무안만민교회, 대영중고할인매장 대표)
첫아이를 낳아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2000년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아이가 자지러지고 얼굴이 푸르스름해지면서 호흡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너무 놀라 어찌할 바 몰랐다. 급히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갔다.
선천성 심장병과 기관지 협착증이라고 했다. 이런 일이 내게 닥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터다. 신앙생활을 한 나로서는 하나님을 의지하느냐, 세상 의학을 의지하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었다. 별 탈 없이 신앙생활을 할 때에는 말씀대로 살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이런 현실이 닥치니 그렇지 못했다. 병원에서 치료받던 아기는 먼저 하늘나라로 갔다.
이 일이 있은 후 우리 부부는 지난날을 하나하나 돌아보았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 믿음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아내는 임신을 핑계로 사명 감당과 기도생활 등을 게을리 했던 것을 깨달으며 회개했다. 그 뒤부터 우리 부부는 각종 예배를 마음 다해 드리기 시작했다. 은혜의 자리는 어찌하든 사모함으로 참석했다. 말씀의 참의미를 깨우칠 때마다 어찌 그리 달고 맛있던지 행복한 나날이었다.
그 당시 나는 크게 깨달은 것이 있었다. 수많은 기사와 표적, 축복의 간증들을 보고 들으면서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를 이끌어 오시는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의 마음이 너무나 부족했다는 것이었다.
2003년 3월, 아내 김은영 집사가 순산의 축복과 더불어 예쁘고 건강한 딸 선아를 낳았다. 첫 아이를 먼저 천국으로 떠나보낸 후 얻은 아이라 한층 더 고맙고 기뻤다. 우리 부부는 충만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던 터라 그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과 주님께 감사했고, 당회장님께도 감사했다.
2004년 4월, 여선교회헌신예배 후 아내는 당회장님께 힘이 되어 드리고 싶다고 하면서 무안의 특산물인 낙지를 드리자는 제안을 했다.
“그래! 낙지는 쓰러진 소도 먹으면 벌떡 일어난다고 하잖아. 당회장님께서 낙지를 드시고 조금이나마 힘이 되셨으면 좋겠다.”
우리 부부는 한 달에 한 번, 무안 낙지골목시장에서 구입한 싱싱한 낙지를 드리기 위해 이른 새벽 서울로 향했다. 잠시 다른 취업 준비로 수입이 없을 때에도 “목자께 낙지만은 심을 수 있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어김없이 역사해 주셨다.
2007년 9월부터 축복의 문이 활짝 열리기 시작했다. 당회장님께 중고가전제품 판매를 한다고 말씀드린 뒤 기도를 받았다. 계약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개업 첫 달에는 십일조를 30-40만 원 드렸다. 사업터 운영을 하나하나 하나님께 의뢰하고자 마음 먹었다. 매달 당회장님께 낙지와 정성껏 선교예물을 심으며 기도를 받았다. 그랬더니 십일조가 나날이 증가했다.
2009년에는 십일조를 100만 원, 많게는 125만 원까지 드리는 축복을 받았다. 이뿐 아니다. 지난 6월 22일에는 넓은 사업터로 확장 이전했고, 7월에는 34평 아파트로 입주했다.
우리 부부가 변함없이 행한 소박한 마음을 기쁘게 받으신 하나님께서 ‘안 될 것도 되고 될 것은 더 잘되는’ 축복을 체험하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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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 김은영 집사와 딸 선아와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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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장 이전한 사업터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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