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
“나는 돌아온 탕자,
남은 인생
섬기며 살래요”
김삼손 집사 (14-1교구, 3-3남선교회)

김삼손 집사가 환자 성도들이 예배드리는 6성전에서 할렐루야봉사대 유니폼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무렵이 되면 더욱 감회가 새로운 사람이 있다. 바로 김삼손 집사(55. 경기 광명)이다. 그는 지금도 조용히 무릎 꿇고 주님께 기도한다.
“주님! 돌아온 탕자를 기쁘게 맞아 주심같이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죄 짓고 회개하기를 반복하는 어리석은 삶이 아니라, 하나님 마음과 뜻을 알아서 그 말씀대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구원의 기쁨과 천국 소망 가운데 항상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옵소서”
김 집사는 1989년, 아내의 전도로 교회에 나왔다. 하지만 그는 단에서 증거되는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억지로 대예배만 드리고 도박판으로 향했다. 결국 운영하던 공장도 남의 손에 넘어가고 전세방을 전전했다. 가족에게 미안하고,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었다.
1994년 12월경, 마침내 그는 가출해 5년 동안 떠돌이로 살았다. 주로 노름판에서 개평을 얻어먹고 살았다. 어느 날, 그는 도박판에서 심한 모욕을 당했다. 아내가 보고 싶고 집이 그리웠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갈 명분이 없었다.
그러던 1999년 5월, 우리 교회에 대한 MBC의 편파 왜곡 방송 사건을 접했다. 문득 교회에 어려움이 닥칠 것이 불 보듯 뻔하고 고통받을 가족이 생각났다. 마침내 가족 품에 돌아갈 명분이 생긴 것이다. 그의 아내 강인옥 권사도 남편에 대한 미움보다는 다시 돌아온 것에 매우 고마워했다. 당회장님께서도 그에게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였다. 사방에서 조여 오는 생활고는 김 집사를 그냥 두지 않았다. 쉴 새 없이 들어가는 생활비와 두 딸의 학비 등 이렇다 할 직장이 없던 그에게는 하루하루가 고문과도 같았다.
2000년 여름, 결국 1년 만에 또 가출한 그는 난생처음 택시 운전을 했다. 어찌하든 돈을 벌어 집에 돌아올 생각이었다. 물론 교회도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무진 고생 끝에 1년 만에 집에 돌아왔지만 남은 것은 질병뿐이었다. 위장에 구멍이 뚫린 위천공이라는 병으로 인해 수술을 해야만 했다.
이 일을 겪고 나니 심령이 가난해졌다. 그는 변화되기 위해 노력했다. 가족도 그를 위해 금식하며 하나님께 매달렸다. 하나님께서는 통회자복의 은혜도 여러 번 주셨다. 차츰 화평한 가정이 되어 갔다. 그는 가족 부양을 위해 노동벌이도 마다하지 않았다. 힘에 겨웠지만 가족을 생각하니 몸과 마음이 거뜬했다.
봉급날 80만 원을 안겨주니 아내는 감격했다.
“여보! 모든 게 하나님 은혜예요. 아끼고 아껴서 하나님께 심읍시다”
그들 부부는 GCN 방송 선교 헌금으로 매월 30만 원을 드리기로 했다. 아울러, 교회 안의 분야 분야를 돌아보며 봉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김 집사는 우리 교회 김종권 집사의 도움으로 일산 상가 건물관리소장이 됐다. 하지만 그 분야에 경험이 없으니 힘들었다. 그만 두려고 할 때 당회장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바로 겸손과 섬김이었다. 그는 매사에 입주자들에게 공손히 대했다. 그럴 때에 입주자들은 오히려 미안해하며 도와주었다. 하나 둘 관리소장으로서의 자질을 키워갔더니 1년 만에 건물 하나를 추가로 관리하는 축복이 임했다.
김 집사는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요 당회장님의 사랑임을 고백한다. 두 번씩이나 교회를 떠나 방황하던 그를 늘 사랑으로 인도해 주었다. 그는 무엇이라도 해서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했다. 그 때 생각한 것이 할렐루야봉사대였다.
“몸이 불편한 성도님에게 묻은 대변을 닦을 때 더럽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저 같은 사람이 누군가를 섬길 수 있다니 감사하죠”
그는 3년째 주일마다 휠체어를 의존해야만 하는 환자 성도를 돕고 있다. 추우나 더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휠체어 봉사를 하며 환자들을 돕고 있는 그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돌아온 탕자와 같은 저를 용서하고 새 삶을 살도록 축복하신 주님 사랑에 눈물짓곤 합니다. 저는 평생 갚지 못할 빚을 진 사람이잖아요”
그는 주님 은혜에 감사하며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섬기며 살겠노라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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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빠진 눈썹이 새롭게 났어요”
나카노 쇼헤이 (일본 오사카 만민교회, 중1)
2007년 2월경, 초등학교 5학년 때 나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절정에 올랐다. 학원 과외와 많은 숙제가 크게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평소 지병이었던 아토피성 피부염이 극성을 부렸다. 온몸을 긁으니 진물과 피가 뒤범벅되기 일쑤였다.
양쪽 눈 주변의 가려움으로 마구 긁으니 순식간에 덥수룩하던 눈썹이 다 빠졌다. 그런 상태가 2년 3개월이나 이어졌다. 외모에 대한 수치심과 더불어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
초등학교 때에는 그래도 앞머리를 길게 해 순간순간을 모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학교 때에는 사정이 달랐다. 머리를 짧게 해야 했기 때문이다.
평소 오사카 만민교회 김건태 목사님과 이창미 전도사님은 나의 애로를 잘 아셨다. 그래서 매 주일 교회에서 아토피성 피부염 치료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셨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치료 간증을 통해 믿음을 심어 주셨다.
올해 6월 어느 날이었다. 옆 반 아이가 눈썹이 없다고 놀리는 것이었다. 나는 상한 마음을 갖고 집으로 돌아왔다. 유달리 힘이 없어보이는 나를 보고 엄마는 물으셨다.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니?”
“눈썹이 없다고 옆 반 애가 놀렸어요”
엄마는 하나님께서 ‘범사에 감사하라’ 하셨으니 이번 일을 감사하며 함께 기도하자고 했다. 나는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이내 마음을 돌이켜 믿음의 고백을 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한 번 더 큰 목소리로 “그 아이에게도 감사합니다” 했다.
2주 후였다. 심한 가려움증이 사라지면서 왼쪽 눈썹이 3분에 1 정도 나기 시작했다. 틈나는 대로 이창미 전도사님이 권능의 손수건(행 19:11~12)으로 기도해 주셨다. 시간이 지날수록 왼쪽 눈썹에 이어 오른쪽 눈썹도 나기 시작했다. 빠진 눈썹이 나기 시작한 지 3주 만에 덥수룩하게 자랐다. 이러한 체험은 내게 큰 믿음이 되었고 하나님 사랑에 감사하며 열심히 신앙생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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