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들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느헤미야 9:6)

당회장 이 재 록 목사
창조주 하나님이 계신 세계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입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을 육의 세계라고 한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계신 공간은 영의 세계입니다. 분명히 존재하는 영의 세계인데도 많은 사람이 영의 세계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사람의 눈에 보이는 육의 공간, 곧 지구를 포함한 우주가 전부라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우주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조차도 광활한 우주의 크기가 무한하다는 정도밖에 설명하지 못합니다.
이처럼 사람의 한계 속에서는 하나님 세계는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를 다 밝혀 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 있다고 하면서 우리 눈에 보이는 하늘 외에도 여러 개의 하늘이 있음을 알려줍니다.
1. 여러 개의 하늘
하나님을 믿고 천국의 존재를 믿는다면 적어도 두 개의 하늘까지는 능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육의 세계의 하늘과 천국, 곧 영의 세계의 하늘이지요. 성경 곳곳에는 그 외에도 또 다른 하늘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시편 68:33에 “옛적 하늘들의 하늘을 타신 자에게 찬송하라 주께서 그 소리를 발하시니 웅장한 소리로다” 했고, 열왕기상 8:27에도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했습니다. 또한 에베소서 4:10을 보면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했으며, 고린도후서 12:2에는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했지요.
사도 바울이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갔다는 고백은 첫째, 둘째, 셋째는 물론, 그 이상의 하늘도 있을 수 있음을 분명히 알려 줍니다. 그런가 하면 스데반 집사는 사도행전 7:56을 통해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고백했습니다. 첫째 하늘에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영안이 열리면 영의 세계를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이 계신 하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과학자들도 하늘이 여럿임을 인정하고 있지요. 한 예로, 미국의 맥스 테그마크라는 저명한 물리학 교수가 소개한 ‘평행 우주론’이라는 이론만 보아도 여러 하늘이 있음을 뒷받침합니다. “우주론적 관측 결과 우리의 우주는 전체 우주의 일부분으로 세상에는 수많은 우주가 존재하며 이 우주들의 물리적 성격이 전혀 다를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외에도 다른 우주가 존재하는데 각각의 우주에 물리적 성격, 즉 시간과 공간적 특징이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과학으로 영적 세계를 다 밝혀낼 수는 없지만, 과학적 접근 방법으로도 우리가 사는 우주가 전부가 아님을 알 수 있지요.
따라서 사람의 눈에 보이는 육의 하늘도 있지만 영의 세계에 속한 하늘들도 있습니다. 여기서 하늘들이란 4차원에 속하는 영의 공간을 3차원 세계에 사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계신 천국을 ‘하늘나라’라고 부르는 것도 하늘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육의 공간과 영의 공간
태초에 하나님이 계신 공간은 하나였습니다. 때가 이르자 인간 경작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한 가지 계획을 세우셨지요. 사람을 창조해 자유 의지 가운데 하나님 닮은 자녀를 찾아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으며 행복하게 살고자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필요한 첫 준비 작업은 하나님이 홀로 계신 공간을 육의 공간과 영의 공간으로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육의 공간과 영의 공간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육의 공간은 사람이나 짐승, 새나 물고기처럼 세월이 지나면 노화되고 썩어 없어지는 육의 존재가 있는 공간으로 육에 속한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으며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질됩니다. 반면에 영의 공간은 영의 존재가 있는 공간으로 영안이 열려야 볼 수 있으며 공간 속에 또 다른 공간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세계와 우주를 가리키는 육의 공간인 첫째 하늘과 영의 공간인 둘째, 셋째, 넷째 하늘이 만들어졌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7에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했는데, 여기서 ‘공중’이라는 곳이 영의 세계에 속한 둘째 하늘입니다.
둘째 하늘에는 창세기 2, 3장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령 아담을 이끌어 들인 에덴동산이 있습니다. 이 곳은 생령 아담을 위해 하나님이 만드신 영의 공간입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어 범죄한 아담과 하와는 더 이상 영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에덴동산에 머무를 수 없었고 결국 쫓겨났습니다.
에덴동산 동쪽에는 인간 경작을 위해 하나님이 악한 영들에게 허락한 공간이 있습니다(창 3:24). 바로 에베소서 2:2에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하여 원수 마귀 사단이 권세를 잡으며 머물고 있는 공간도 ‘공중’이라 합니다. 따라서 둘째 하늘에는 어둠의 영역과 빛의 영역이 있습니다.
셋째 하늘은 장차 구원받은 영혼들이 영원토록 있을 천국의 공간입니다. 고린도후서 12:2-4에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고백합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가서 천국의 낙원을 보고 온 것을 말하며, 셋째 하늘에 있는 천국은 단지 하나의 공간이 아니라 여러 개로 나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넷째 하늘은 하나님이 태초에 홀로 계셨던 공간입니다. 소리를 머금은 빛으로 계시면서 모든 우주 공간을 마음에 품고 다스리던 공간이지요. 첫째, 둘째, 셋째 하늘의 공간에는 각각 다른 시간의 흐름이 있는 반면, 이곳에서는 시간이나 공간이라는 표현 자체가 무의미하며 모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마음에 품기만 해도 그 즉시 이루어집니다.
3. 공간이동의 역사
이러한 육의 공간과 영의 공간은 겹쳐 있습니다. 사도행전 8:39-40에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흔연(欣然)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말씀합니다.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감으로 빌립은 순간 광야에서 멀리 떨어진 아소도로 이동했습니다. 육의 공간과 겹친 영의 공간을 통해 이동했기 때문에 순간 사라졌다가 얼마 뒤 공간이 겹친 또 다른 곳에 다시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의 공간을 이용한 하나님 권능은 성경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온전히 영으로 들어가서 육의 몸을 완전히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차원에 있을 때라야 가능합니다.
열왕기상 18:45-46을 보면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저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했습니다. 여호와의 능력이 임해 그 순간 엘리야의 몸을 하나님 권능으로 감싸니 영의 시간의 흐름을 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20:19에는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했습니다. 예수님이 순간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며 문이 닫힌 곳에도 들어올 수 있던 것은 영의 공간을 이용해 이동했기 때문입니다. 물 위를 걸으신 것도 마찬가지이지요.
또한 성경 출애굽기에서도 사람이 땅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출현한 수많은 메뚜기 떼, 만나와 메추라기,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 등 영의 공간을 이용해 이동한 하나님 권능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요 4:48)는 말씀처럼 이 시대에는 하나님 권능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하늘의 공간을 열고 놀라운 역사로 함께하시는 하나님 권능을 늘 체험하는 복된 성도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