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득불 할 일 전 도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고린도전서 9:16)

당회장 이 재 록 목사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내내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면서 전도하셨습니다. 허름한 샌들을 신고, 건조한 사막 기후의 이스라엘 곳곳을 걸어 다니셨기 때문에 그 발에는 늘 모래와 먼지가 묻어 있었고 때론 붓기도 했지요. 하나님은 이러한 예수님의 발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셨습니다. 이는 발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생명을 구원하는 역사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자녀라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9:16에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했습니다. ‘부득불(不得不) 할 일’이란 ‘아니할 수 없는 일, 반드시 해야 하는 일,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뜻합니다. 그러면 왜 이처럼 전도가 부득불 할 일일까요?
1) 주님께서 하신 지극히
큰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명령’이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을 만날 때마다 증인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18-20에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셨습니다. 또한 마가복음 16:15에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말씀하셨지요. 주님이 승천하시기 직전에는 사도행전 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전도는 주님이 내린 지상 명령이며,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으로서 믿는 자의 기본적 사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아 성령을 받고 하나님 자녀가 되면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도 도리를 아는 자녀는 부모님이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은 반드시 지킵니다. 물론 주님은 부활하고 승천하셨지만, 이 땅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이 전도이니만큼 그 은혜를 아는 성도라면 도리를 좇아서라도 전도해야 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전도할 것을 말씀하면서 한 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5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지요. 이 약속을 받은 제자들과 주를 믿은 사람들은 주님이 승천하신 뒤, 날마다 모여 기도에 힘썼고 마침내 오순절에 성령이 충만해집니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사람이 되어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며, 하나님 아들로서 죽은 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담대하게 전하지요. 이처럼 성령받기 이전과 이후는 모든 것이 확고하게 바뀝니다.
마가복음 16:20에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 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제자들은 성령의 역사 가운데 담대히 복음을 전했고, 그들을 통해 말씀을 확증하는 표적이 많이 나타났지요. 주님이 함께해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주님이 명한 전도를 순종하여 행한다면 반드시 성령은 도와주십니다. 각 사람에게 적절한 전도 방법을 알려줍니다. 또한 질병이나 가정 문제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사랑의 중보 기도가 때에 맞게 응답되어 전도 대상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됩니다.
2)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하면 한 생명을 살릴 수 있고 그가 받아들이지 않아 지옥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전도를 하지 않아 지옥에 갔다면 하나님은 그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전도했는데도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면 전도자로서의 책임은 다한 것입니다(겔 33:1-6).
한 영혼을 온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하나님은 모든 영혼이 구원받길 원하십니다. 비록 죄악 중에 살아가는 사람이라 해도 그들이 회개해 구원받길 원하지 그대로 사망에 이르길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면 그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하나님 말씀을 전할 사람이 필요한데 하나님은 자녀들이 그 역할을 감당해 주기를 원하십니다. 전도하는 사람이 있어야 들을 수 있고, 들어야 믿음이 생겨 구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롬 10:14).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이 복음을 듣지 못해 지옥에 간다면 전하지 않은 사람은 그 책임이 큰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4에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말합니다. 그는 주님께 받은 죄 사함의 은총과 사랑으로 인해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마음이 불타올랐습니다. 누군가가 복음을 듣지 못해 구원받지 못한다면 마치 그것이 자신의 탓인양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이방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중에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아야 한다는 애절한 심정으로 날마다 쉼 없이 복음을 외쳤지요. 어떤 시련도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온통 영혼을 구원할 마음으로 가득했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많이 맞고 감옥에 갇혀도 하나님께 감사했고 그 입에서는 찬미가 흘러 나왔습니다. 이러한 감사의 찬미는 감옥 문이 열리고 간수와 그의 권속이 복음화되어 하나의 교회가 세워지는 놀라운 역사로 나타났지요.
다니엘 12:3에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했고, 누가복음 15:7에는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했습니다. 이는 영혼 구원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며, 얼마나 큰 상급인지 알 수 있습니다.
3) 지옥으로 가는 영혼이
천국으로 인도받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9:27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했습니다. 단지 죽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으면 반드시 천국, 지옥의 두 갈래가 있고 심판이 있습니다. 주님을 믿고 성령받은 사람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지만 믿지 않은 사람은 지옥에 떨어져 영벌을 받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거지 나사로와 부자가 나옵니다. 나사로는 비록 거지였지만 하나님을 경외해 죽은 뒤에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부자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은 뒤에 아래 음부에서 고통받지요. 그 고통이 얼마나 큰 지 천국에 들어간 나사로의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서라도 자기 혀를 서늘하게 해 주기를 바랄 정도였습니다. 주님이 공중 재림하고 천년왕국이 임한 뒤, 백보좌 대심판을 받기 전까지 아래 음부에서 이같은 고통을 받아야 하며, 백보좌 대심판에 의해서 지옥으로 떨어졌을 때에는 말로 상상할 수 없는 더한 고통을 받습니다. 이러한 고통은 끝이 없으며, 영원히 계속되지요.
이런 것을 생각한다면 전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주님을 사랑하며 천국과 지옥을, 심판이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라면 어찌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며 전도하지 않겠습니까. 내 부모, 형제, 자식, 이웃, 친구, 일가친척에게 어찌 전도하지 않겠습니까.
누가복음 16:27, 28에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했습니다. 아래 음부에 떨어져 고통받는 부자는 형제들을 이곳에 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전도해 줄 것을 부탁합니다.
우리는 뭇 영혼에게 천국과 지옥이 분명히 있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살아 계신 증거를 알려서 그 증거를 보고라도 믿음을 가져 구원에 이르도록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일 어느 날 어느 곳에서 대형 참사가 있는 것을 안다면 가족이나 아는 사람들을 그날 그곳에 가게 하겠습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지 못하게 막을 것입니다.
주님 오실 날이 참으로 가까운 이때, 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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